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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현 명예기자 slo_moh@hanmail.net
시계보다 철저하게 시간을 지킨 남자
러시아의 과학자 류비셰프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셰프(1890-1972)

시간은 흘러간다고 느끼지만 사실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 폴 데이비스
시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발명해낸 가장 독창적인 발명품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은, 어쩌면 가장 개연성이 떨어지는 허구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과학자도 철학자도 시간이 무엇이며, 왜 존재하는지 잘 모른다. 모래시계 아래쪽에 쌓여가는 모래알들은 시간이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확히 보여주지만, 시간의 본질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이처럼 시간이라는 존재는 우리 자신의 가장 깊숙한 본질에 그 어떤 것보다 친숙하게 맞닿아 있지만, 이를 명확히 규명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인류의 오래된 수수께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여기, 시간을 마치 ‘눈에 보이는 물질’인 것처럼 수치화하여 살았던 사람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1분, 1초를 철저한 계획 하에 살았던 사람, 러시아의 과학자 류비셰프. 과연 그에게 있어서 시간이란 무엇이었을까.

실상 류비셰프 이전에도, 시간을 정확히 지키며 살았던 사람은 있었다. 독일의 대철학자 칸트. 그는 오로지 서재와 대학교 사이만을 오가며, 팔십 평생을 연구에만 바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특히 시간에 대해서 엄격했다. 기상은 다섯 시, 취침은 열 시로 정해놓고 늘 그것에 맞춰 생활했다. 또 언제나 오후 세 시에는 반드시 산책을 나갔고, 그 시간은 일 분 일 초도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툭하면 멈추곤 하는 거리의 시계탑을 믿지 않고, 그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시간을 맞췄다는 얘기는 이미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류비셰프는 시간을 계획하는 데 있어, 보다 구체적인 시간통계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칸트의 그것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인다. 그가 쓴 1964년 어느 날의 일기를 잠깐 살펴보자.

[1964년 4월 7일, 울리야노프스크
곤충분류학 : 알 수 없는 곤충 그림을 두 점 그림. 3시간 15분.
어떤 곤충인지 조사함 - 20분(1.0).
추가 업무 : 슬라바에게 편지 - 2시간 45분(0.5).
사교 업무 : 식물보호단체 회의 - 2시간 25분.
휴식 : 이고르에게 편지 - 10분.
울리야노프스카야 프라우다誌 - 10분.
톨스토이의 <세바스토폴 이야기> - 1시간 25분.]

얼핏 보기에 이 기록은, 그저 지나가버린 하루의 시간을 수치화하여 측정한 것에 불과하다. 류비셰프 자신도 이것을 일기라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기록을 ‘시간통계’라 여겼고, 따라서 이는 그 자신이 미리 계획해 두었던 일에 대한 결산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그가 이런 식의 시간 측정으로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류비셰프의 이러한 시간통계 방법은 철저한 계산과 관리 속에서만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시간을 배당하면서 실제 생활에서의 실천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여, 사용 가능한 시간을 고려했다.

예를 들어, 류비셰프는 하루에 순수 연구에만 소요되는 시간을 10시간으로 잡았다. 그리고 10시간을 세 부분(1) 혹은 여섯 부분(0.5)으로 나누고, 분 단위까지도 정확히 계산했다. 또한 각 업무를 학문관련 업무와 기타 업무 등으로 분류하고, 난이도에 따라 시간을 배당했다.

이처럼 그는 회계장부를 기록하듯 그 나름의 방식으로 시간을 계산했다. 그리고 매월말마다 합계를 냈고, 연말에는 월말 합계를 바탕으로 연간 총계를 계산하였으며 결산표를 만들었다. 이같은 연간 결산에서는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했는지, 계획했으나 실행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 자신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이루어졌다.

▲2004년 재발간된 류비셰프 평전

이를 통해 그는 평생 동안 총 70권의 학술 서적과 12,500여 장(단행본 100권 분량)에 달하는 논문과 연구 자료를 남겼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그는 하루에 8시간 이상 충분히 수면을 취했고, 연극, 영화, 음악회 등을 즐겨 관람했으며, 산책과 운동을 한가롭게 즐겼다. 또한 동료, 가족, 자신과 다른 의견으로 맞서는 논쟁자들에게 엄청난 편지를 썼으며, 결정적으로 생계를 위해 직장에도 다녔다.

류비셰프에게는 시간이 늘 충분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든 온 정신을 집중해 흘러가는 시간을 잡아냈고, 최대한 많은 일을 해냈다. 즉 그에게 삶은 곧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가 개발한 시간통계 방법은, 결국 시간에 대한 경건함을 표하는 그 나름의 방식이었다.

물론 그가 개발한 시간통계 방법은 시간을 절약하는 데는 탁월했지만, 본래의 시간 자체를 늘릴 수는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그가 추구했던 것이 바로 시간의 ‘양’이 아니라 ‘질’이었다는 사실에 다름아니다.

시간통계를 내려면 자투리 시간까지 포함해서 자신의 활동시간을 모조리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먹고 자는 시간은 통계시간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모든 시간은 똑같이 귀하게 평가되었다. 즉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매 시간은 자기 삶의 일부분이며, 따라서 모든 시간이 다 똑같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삶은 하루하루 숨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우리의 일상에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긴다. 물론 시간에 대한 그의 태도는, 안 그래도 각박한 현실 속에서 ‘꼭 그렇게까지 시간을 수치화 해야 하나’ 라는 의구심을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류비셰프 자신도 그의 시간통계 방법을 권하거나 강요하지는 않았다. 이는 그저 그의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었다.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시간이라는 존재와, 이에 당당히 맞섰던 한 과학자의 치열한 삶. 이는 우리가 주어진 매순간을 소중히 살아갈 때, 그 속에서 시간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 보여 준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 시점에서, 스스로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일. 한번쯤 필요하지 않을까?

▲스스로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일, 한번쯤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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