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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명예기자 erios@hanmail.net
대중문화평론가를 '평론'하다.
평론가들은 과연 '평론'을 하고 있는가.

▲많은 책들, 하지만 평론이 붙는 책은 따로 있다.©뉴스미션

1.
‘심판은 창조보다 쉽다.’ 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이자 문학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강웅식 교수의 말이다. 그는 평론가의 사회적 의미를 말하면서 축구 경기를 예로 들었다. 전후반 90여 분을 쉴 새 없이 뛰며 창조적인 역할을 강요당하는 선수들과, 공 가까이서 호각을 불고 카드를 꺼내드는 심판 중 누가 과연 더 힘들까? 신체적인 상황은 비슷할지 몰라도 경기 결과에 따른 심리적인 압박 등을 고려해 볼 때 선수들이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 경기에서 심판이 빠지면 경기가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듯이, 문화라는 큰 운동장에서 그 역할을 하는 평론가가 없으면 우리의 문화는 사회적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2.
여기서 우리는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 있다. 과연 오늘날의 평론은 홍보 행위인가, 심판 행위인가? 대답이 너무 자명해 보이는 듯한 질문이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는 평론을 머리로는 심판 행위라고 이해하면서 가슴 한 구석에는 홍보 행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비단, 문화 컨텐츠를 수용하는 소비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제공하는 생산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도서나 공연에 혹 미진한 점이 있더라도, 평론가가 그것을 냉정하게 시비를 걸기 보다는 되도록 그 대상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킴으로써 제작자들을 격려해주고,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주는 것이 실질적인 평론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그와 같은 의도적 과대평가가 거듭될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신뢰를 잃어서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 또한 문제다. 홍보라는 것은 그것이 의도적이었다 할지라도, 그 대상에 따라서는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질적으로 정말 우수한 작품이 있는데, 기획사의 문제나 대외홍보 재원의 문제로 그것이 잘 되지 않았을 경우, 언론매체의 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접하게끔 도와주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 ‘평론가’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이 대중의 큰 인기를 얻어,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것들을 굳이 끄집어내어 ‘평론’이랍시고 필봉을 휘둘러댄다.

요즘 온라인상에서 많은 질타를 받고 있는 배국남 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특정 드라마에 대한 편파적인 평론으로 많은 비판을 받은 서병기 씨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특히 그는 당시에 빈약한 스토리 전개와 몇몇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가 문제가 된 드라마 <궁>에 대해, 극히 옹호적인 평론을 십여 개나 써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게다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솔직담백하고 서정적인 글로써 인기를 얻고 있는 강명석 씨도 마찬가지다. 분명, 그의 글은 깊이가 있고 분석적이긴 하나, 주로 거대기획사 소속의 연예인이나, ‘비’와 같은 인기 연예인들을 다루는 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이는 강명석 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요즘 평론가들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다. 그들은 약간의 지식과 사람들의 감성을 후벼파는 이른바 ‘글빨’을 무기로 인기가수 누구의 발성이 어떠하고 그가 세계무대에서 성공하려면 이러이러한 점이 요구된다는 등의 ‘뻔한’ 말만 하고 있다. 과연 이렇게 뻔한 글들을 우리는 ‘평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마치 대중일간지에서 흔히 등장하는, ‘전면광고’라는 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글귀를 귀퉁이에 장착한 광고문에다 자신의 감상을 적당히 버무린 정도의 글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얻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3.
이와 같이 다분히 이해타산적인 평론들이 나오는 문제의 원인에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평론가 양산 시스템이 그 저변에 깔려있다. 다시 말해, 비전문가인 일반 대중들에 의해 많은 '아마추어' 평론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들은 문화평론가의 앞머리에 ‘대중’이라는 글자를 방패삼아 대다수의 대중이 원하고 좋아하는 문화를 대상으로 글을 쓴다. ‘대중문화평론가’이기에 ‘대중문화’를 다룬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평론가 강명석 씨는 ‘평론문화의 대중화로 인해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가 사라지게 되고, 결국은 문화적 평등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소비에만 그치는 수용자들을 또 하나의 문화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적극적 생산자로 돌려 놨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은 긍정적일진 몰라도 그것은 참여와 토론으로 끝이 나야 한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이들의 글을 단순히 이름값만 믿고 ‘평론’이라고 이름을 붙여, 그들에게 어떠한 힘을 실어준다는 게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한계는 특히 그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일정한 잣대 없이 그저 감정이나 인기에 근거해 탄생한 요즘의 평론은 단순히 에세이나 감상문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의 인기가 떨어지면 평론도 금방 가치를 상실하게 되어, 지속적인 생명력을 이루지 못하는 현상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예컨대 <무한도전>이나 <거침없이 하이킥> 등 현재 주가를 올리는 프로그램에 관한 평론은, 그 개수를 따지는 것이 어리석은 짓일 만큼 많다.

게다가 ‘평론’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을 무기로, 바로 옆의 사람들까지 이것에 반응하고 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인기 프로그램과 비인기 프로그램의 격차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오히려 문학성과 작품성이 뛰어난 프로그램들이 대중들로부터 소외당하는 현실에서, 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프로그램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프로그램의 인기나 연예인의 명성에 따라 평론이 좌지우지 되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서 재미있냐, 그렇지 않냐에 의해 평론이 결정되는 현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평론가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전문성이 부족한 일간지 기자의 눈에 띄어 양성된 사이비 평론가들보다는 실제로 문화의 각 분야에 종사하는 ‘프로페셔널’한 이들을 적극적으로 평론가로 키워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프로페셔널’이란 단순히 어떤 문화를 놀이로서 인식하고 그것을 즐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그 문화를 직업으로 생각하면서, 양식있는 사람이 읽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전문적인 식견을 함양한 이를 말한다. 예를 들어 사회과학자 출신의 신현준씨나 김윤식 국문학과 교수와 같은 이들이 자주 나와줘야 문화의 평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의 ‘뻔한’ 말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을 포함한 여러 언론매체 또한 자체적으로 양적으로 넘치는 평론가들을 걸러내야 한다. 무조건 그 사람의 인기나 ‘잡학’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가 가진 지식이나 문화적인 시각을 통해 그들에게 ‘평론가’라는 이름표를 붙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가 출현했을 때, 엄청난 흥행에 힘입어 누구나 할 것 없이 ‘동서양 철학의 현대적 접근’이라며 극찬했을 때, 자신의 학문적 근거를 바탕으로 감히 그것을 ‘헐리우드의 똥’이라며 과격히 비판한 도정일 경희대 교수같은 사람이 차라리 평론가로서 더 낫다는 것이다.

4.
평론가는 수용자와 생산자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종의 ‘가교(架橋)’다. 그들은 수용자들로 하여금 어려운 것은 적절한 해설과 풀이를 통해 그것에 대한 접근을 도와주고, 평이한 것은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중요한 내용들을 짚고 넘어가게 해준다. 하지만 정작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만을 추구하고 찾아다니는 오늘날의 평론 문화는 오히려 그것의 객체인 문화의 뿌리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서정적이고 인기 문화만 좇는 평론은 더 이상 ‘평론’이 아니다. 평론가들의 자성은 당연하거니와 사이비 평론가들의 창구가 되어주고 있는 언론은 이를 직시하고 문제의 개선에 함께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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