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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명예기자 erios@hanmail.net
반전, 그 평화적 공식으로의 접근
[인터뷰] 반전 운동하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박유진씨

▲반전 운동 포스터 ©뉴스미션

‘아프리카 사자는 다른 사자를 사냥하지 않는다.’ 이는 반전 운동에 참가하고자 뉴욕을 방문한 어떤 마사이족 청년의 말이다. 사자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은 자신의 삶을 위해 같은 종족의 생명을 앗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는 인간들은 끊임없이 같은 종족의 사람들과 싸우고 심지어 그들의 목숨을 빼앗기까지 했다. 특히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듯이, ‘전쟁’을 빼놓고선 도저히 인간 사회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전쟁’은 우리에게 중요한 딜레마다.

게다가 오늘날의 전쟁은 예전의 그것과는 달리, 생존의 이유에서가 아니라 어떤 경제적 가치나 사소한 국가적 자존심에 의해 발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축구전쟁’으로 유명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심판의 편파 판정과 타국 선수단들에 대한 격한 응원으로 빚어진 이 전쟁은 결국 개전 후 단 며칠 만에 끝이 나서 ‘100시간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갈등에서 벌어진 이 전쟁은 순식간에 2,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쟁은 날이 갈수록 그 규모가 커져만 가고 희생자의 절대적 수도 증가하고 있다. 각국은 앞다투어 군비를 증강하고 있고, 전쟁 무기들은 혀를 내두를 만큼 고도화되어 가고 있다. 과연 우리는 전쟁을 겪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 만약에 그런 방법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현재 국내 반전단체의 연합조직인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에서 활동하는 한 대학생을 만나 전쟁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서울대학교 정문 근처에서 만난 그는 다소 피곤해 보였다. 방금 시청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뒤라 힘이 들었지만 그는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서울대 물리학과 3학년 박유진씨 ©뉴스미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유진(24)씨는 처음부터 ‘반전’이라는 활동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자신이 다니는 전반적인 학교 분위기가 그랬고, 전공으로 하는 학문은 더욱 사회문제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5년전에 평범한 학생이었던 효순이와 미선이가 겪은 불의의 사고를 계기로 미국과 한국, 그리고 전쟁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그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전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전 전쟁이란 것은 일종의 다툼이 격화된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라 생각해요. 말싸움도 어찌 보면 전쟁의 일종이죠. 하지만 그것이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사람이 죽는다고 다 전쟁이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는 전쟁은 그 다툼의 형식이 국가 존립을 위협할 만큼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옆동네에서 어떤 사람이 피살당했다는 것은 살인사건이지 전쟁이라고 말하진 않잖아요. 그리고 9.11 테러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건 미국인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그 때 희생당한 사람들의 수는 절대적으로 따져봤을 때, 전체 미국인 숫자의 극히 일부분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 때 미국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낯선 이방인들이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자신들의 가슴에 칼을 꽂은 셈이니깐요. 이런 게 바로 전쟁이죠.”

학생인데다 물리학과라는, 사회활동과는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자신의 이력 때문에, 박군은 처음에는 활동하기가 약간 불편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이 의식되기도 하고, 짓궂은 사람들은 사회주의 사상이나 혁명 같은 개념들을 넌지시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제가 처음에 받았던 질문들 중에 혁명과 전쟁의 차이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에 대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때 당시만 해도 잘 구분을 못했었는데, 이제는 나름의 차이점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혁명은 ‘밑에서부터의 전복’이라는 성격을 띠는 반면에, 전쟁은 기득권 세력의 욕심에 의해 발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또‘상층부에서의 권력 이동’이라는 쿠데타와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전쟁은 근본적으로 항상 사람들의 목숨이 담보로 걸리곤 하죠.”

“하지만 혁명은 처음부터 피를 원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 달성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는 혁명을 지지하는 민중들의 자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벨벳 혁명으로도 불리는 무혈혁명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벨벳 혁명이란 1989년 11월 ‘하벨’이란 사람이 반체제연합인 ‘시민포럼’을 조직해 공산 독재체제를 무너뜨릴 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시민혁명을 이룩한 데서 유래한 것인데요, 이러한 혁명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횟수가 많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전쟁이 인간에게 필연적인 것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연 이러한 전쟁이 없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얼핏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반전주의자들의 주장은 너무나 현실과 괴리된 부분이 많고, 왜 없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그의 의견을 물어봤다.

“먼저, 반전 운동의 근거부터 들어야겠죠. 우리와 같은 반전 단체가 세계 곳곳에 생겨난 것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중세시대나 근대사회에 반전 단체가 있었나요? 그 때의 전쟁은 오늘날의 전쟁과 그 발발동기부터가 달랐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살 때의 전쟁은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죠. 워낙 살기가 막막하다 보니 남의 식량과 재산을 빼앗기 위해 시작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것이 정당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전쟁은 그와는 아예 뿌리부터 틀립니다.”

“있는 사람이나 국가가 없는 이들의 것들을 빼앗으려 든다는 것이 바로 그겁니다. 우리는 거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군비를 증강하는 이들은 기존의 강대국들입니다. 미국의 예를 들어볼까요? 미국은 올해의 군비가 5,287억 달러로 군비 면에서 세계 3위인 중국과 비교해 볼 때 그 차이가 엄청납니다. 중국은 495억 달러에 그치고 있죠. 그리고 미국이 평화유지군이랍시고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은 세계 곳곳에서 그들의 천연자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요, 오히려 평화유지군이 그들의 평화를 저해하고 있는,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들의 주장은 그들 안에서만 맴도는 경우가 많다. 너무 이상적이다, 유토피아적이다 라는 지적이 항상 그들 곁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게 사실인데, 그들 또한 이를 잘 직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봤다.

“우리도 우리의 주장이 이상적인 개념이라는 것에는 동의를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리 우리가 이렇게 운동을 한다고 해도 전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내부에서도 전쟁이 인간에게 필연적이라는 것이라는 말에 이의를 다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 세계 전쟁의 완전 축출 따위가 아닙니다. 그것만큼 비현실적이고 성사 가능성이 제로를 달리는 무의미한 짓도 없습니다.”

“제가 물리학도이다 보니 수학적으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수학자들은 어떤 공식을 도출할 때 모든 오차를 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대를 거듭하면서 몇백년의 연구 끝에 겨우겨우 나오는 공식들도 있죠. 하지만 이러한 공식들도 현실 생활에 적용해 보면 이론상의 결과와 같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없다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수학자들은 그 공식을 성경의 어구인양 신성시 여기고, 그것의 발전에 온 힘을 쏟습니다. 어떻게보면 수학자들의 끝없는 연구는 이러한 오차를 한없이 줄여가는 과정인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오차를 줄인다고 해서, 현실 생활에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공식은 절대로 도출되지 않습니다. 주위에 존재하는 오차는 그 미묘함의 정도가 엄청나기 때문이죠. 북경 나비의 날개 짓이 미국의 토네이도를 만든다는 말이 이를 잘 설명해 주는데요, 이처럼 우리의 운동도 이렇게 오차를 줄여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간 활동의 가장 큰 오차인 무의미한 전쟁을 한없이 줄여나가는 데 온 힘을 쏟는 것이 바로 우리 집단의 목표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회의 ‘오차’를 줄여나가겠다는 그에게, 그를 포함한 반전 단체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또한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어떤 공식이 적용되는 세상인지가 궁금해졌다. 그것들에 대해 물어봤다.

“당연히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전쟁이 없는 세상입니다. 르완다 내전을 아세요? 그 전쟁이후, 르완다인들은 ‘인민재판’ 이라는 독특한 사법제도를 만들었는데요, 말 그대로 사법관이 법정에 참석한 인민들을 바탕으로 당시 학살자들을 재판하는 것입니다. 이 재판에 선 사람들은 거의 다 용서를 구합니다. 인민들도 처음에는 사형을 요구하다가 결국 그 용서를 받아들이고 무죄로 석방해주죠. 당시 3,000명을 학살했던 사람들도 그 재판을 통해 살인자의 명찰을 떼어내게 되는 겁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정치범들을 끝까지 쫓아가서 교수대에 올리려고 한 선진국의 지도자들과는 확연히 구분이 되죠?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처사지만, 이러한 관용의 정신을 한번 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피는 피를 부르는 법이니깐요. 저는 이러한 그들의 의식이 우리가 주장하는 공식의 해법이라고 봅니다.”

“전쟁이 없는 세상은 어느 누구나 원하는 세상이겠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거기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전쟁에 대해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들을 알리는 것이고 그것이 곧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무의미성을 알고 그것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 사회의 치명적인 ‘오차’가 점점 더 줄어들지 않을까요? 최근에는 이라크 파병을 포함, 한미FTA와도 연관을 짓는 운동도 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가 효순이와 미선이가 세상을 떠난 지 5주년이 되는 해라, 우리도 자신들의 활동에 더 신중을 기하고 있죠.”

인터뷰 내내, 그는 자신감에 넘쳤다. 반전주의자인 그 스스로가 한계를 알고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는 우리 사회가 차차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대학생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을 물으며 짧지만 길었던 인터뷰를 마쳤다.

“단체에 있다보면,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학생들끼리 대학로나 신촌에 나가서 모금 운동을 하는데요, 젊은이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죠. 원래 그런 거리에 나온 사람들의 목적이 단순히 여가 선용에 지나지 않겠지만 한번쯤은 눈길을 줬음 하는 바람입니다. 한 사회를 움직이려면 먼저 그 사회의 젊은이들이 분연히 일어나야 하는 법이니깐요.”

“전 가끔씩 70, 80년대가 그립습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들으시면 발끈하실지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특히 그렇습니다. 그 때는 담배값이 500원이었고, 자장면이 1,000원 정도 했었잖아요. 그리고 늦은 밤에 서울 하늘을 올려보면 별들도 보였고 말이죠. 또한 무엇보다도 부러운 것이 그 때 당시의 젊은 대학생들의 사회의식입니다. 그들은 대학생이라는, 일종의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에 너 나 할 것 없이 몸을 던졌잖아요.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 학점에만 목을 메다 보니 이렇게 부르짖는 것도 참 한계를 느끼는 때가 많습니다. 조금이나마 우리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의 ‘공식 도출’에 많은 관심을 가져서 우리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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