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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그들만의 ‘써클’
부의 상징, ‘클럽 써클’을 가다
#1. <말죽거리 잔혹사>로 유명한 영화감독 유하 씨의 작품 중에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시집이 있다. 이 시집이 발간될 때까지만 해도 압구정동은 소위 ‘잘 노는 사람’들이 ‘바람’이 들면 가는 곳, 그것도 웬만한 ‘바람’이 아니라면 감히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거기 오는 이들은 명품 상표의 옷과 가방을 갖추고 그것이 자기 부모님의 배경이든 자신의 능력이든 간에, 압구정을 떳떳히 거닐려면 일단 고급 외제차를 타고 나와야만 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압구정동엔 아무것도 없었다. 동대문에 가면 절반 값에 살 수 있는 옷들을 비싸게 파는 편집 매장들이나 헤어숍, 커피숍, 술집들이 전부다. 그런데도 압구정동엔 늘 사람들이 많았다. 압구정동은 어딘가 들어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옷도 입자고 사는 게 아니다. 패션은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어제 산 멋진 차를 타고 오늘 산 멋진 옷을 입고 따로 갈 곳이 없었다. 누구의 말마따나 압구정동은 그 자체로 거대한 패션쇼 장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이제 압구정동은 좀 ‘논다’ 하는 사람들한테는 종로나 신촌, 대학로 같은 구닥다리 이름이 돼 버렸다. 더 이상 한 시대의 고급 부류들만이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서의 명성을 상실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특수한 경연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지리적인 위치만 약간 이동한 것 뿐이다. 이제 ‘잘 노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자신의 배경과 능력, 그리고 잘난 외모를 뽐내고 싶은 이들은 이제 ‘바람’이 부는 날에 청담동에 간다. 따지고 보면 청담동은 위에서 말한 압구정동과 엎어지면 코가 닿을 만큼 가까운 동네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미묘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 마치 다른 나라인 양, 단 몇 킬로미터를 사이에 둔 이 두 ‘나라’는 그 분위기부터 사뭇 다르다. 연예인으로 데뷔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외모에다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각종 명품을 걸치고, 메고 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국산차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양 거리마다 쏟아져 나오는 고급 외제차들. 숨 쉬는 공기마저 ‘부티’가 나는 이 동네, 아니 ‘동네’라는 말을 붙이기가 웬지 어색한 이 곳 청담동. 그 중심에 밤이 되어야 생기가 도는 그들만의 묘한 클럽이 있다.
#2.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시각. 하지만 ‘클럽 써클’은 밤이 돼서야 해가 뜬다. ‘클럽 써클’은 늘 북적댄다. 사람들은 남들이 다들 가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클럽이라니까, 가 봐도 별 것 아닐 거라고 비웃으면서, 무슨 ‘건수’ 하나 건질까 싶은 마음에, 자신이 인생을 멋지게 살고 있다고 믿고 싶어서, 저마다의 욕망을 기대하며 클럽에 간다. 개장 시간이 가까워지면, 자연스레 지하 계단으로 줄이 형성된다. 하지만 무턱대고 아무나 이 거룩한 줄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다. 일단 외제차를 타고 오면, 무사 통과. 발레파킹(대리주차)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손수 문까지 열어주면서 손님답게 모신다. 그렇지 않고 일반 국산차를 타고 오거나 혹은, 저 멀리서 걸어서 오는 모습이 입구 직원들의 눈에 포착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검은 정장의 건장한 직원들이 먼저 제지를 한다. ‘테이블 예약하셨습니까’ 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고, 혹시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클럽써클’로의 입장은 그들 손에 달렸다. 직원들이 봤을 때, 그 손님의 외양이나 후광이 별로 좋게 안 보였다면, ‘자리가 없다’라는 핑계조의 답변과 함께 입장불가의 판명을 받는다. 여기서 말한 ‘테이블’이란 클럽 내의 소파가 비치된 조그마한 술상을 말한다. 보통 5인 기준인 이 자리는 주말과 평일 여하에 따라서 20~30여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예약이 가능하다. 이렇게 고가의 비용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주말의 ‘테이블’은 일주일 전에 예약이 다 끝나고 대기인원만 해도 수 십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곳보다 더한 곳은 바로 ‘룸’. 마치 시내의 여느 노래방과 비슷한 이 곳은 예약비가 80 여만원에 육박한다. 그리고 그 격에 따라서 100만원을 호가하는 ‘룸’도 있는데 이 역시, 주말의 경우 일주일 전에 예약 마감되는 것이 보통이다.
#3. 까다로운 선별 과정을 잘 거쳤다면, 그 대가로 팔띠가 주어진다. 이 팔띠만 있으면 춤을 추다가 지치면 밖에 나갈 수도 있다. 다른 클럽 입장료의 2배가 넘는 3만원 치고는 약간 아까운 감도 들지만 들어서는 순간 그러한 마음은 사라진다. ‘슈퍼클럽’이라는 별명답게 써클은 그 규모부터 어마어마하다. 300 평을 웃도는 웅장한 외관 아래, 싸이키와 DJ가 믹싱한 음악이 현란하게 춤을 춘다. 365일 DJ의 파티가 있는 클럽. 당연히 다른 클럽의 DJ들마저 써클의 고수들이 믹싱한 음악과 그들의 기술을 감상하고 눈치껏 배우기 위해 오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마치 대한민국 미남 미녀만 집합시킨 양, 그 곳에서 노는 이들은 정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들 ‘잘났다’. 동네 유흥업소 아가씨들을 풀어놓았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니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사람들의 복색이 그들의 얼굴이 그러한 것처럼 한결같다. 요즘 절찬리에 유행하는 스키니 진과 달라붙어서 가슴이 옹골지게 드러나는 티셔츠 차림들이다. 간혹 늘씬한 각선미를 뽐내느라 미니스커트 입고 온 여자들도 있다. 그러나 ‘슈퍼클럽’답게 써클 내의 외장이나 시설은 사람들의 비슷한 외양과 달리 매우 특이하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클럽은 술을 먹는 장소와 춤을 추는 곳이 구분되어 있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나 써클은 춤을 추는 스테이지와 술을 먹는 테이블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맥주병을 들고 리듬을 타며 춤추는 모습은 써클에서 볼 수 없다. 무대 전면에 DJ가 연주하는 장소가 있으면 앞 쪽으로 스테이지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외곽을 따라 조그마한 쇼파와 테이블이 비치되어 있고 클럽 중앙에는 술을 파는 바(Bar)가 마련되어 있다. 써클의 이 테이블은 천천히 돌아간다. 남산 타워의 전망대처럼 한 자리에 계속 앉아 있어도 클럽 전체를 빙그르 구경할 수 있다. 음악을 감상하며 춤추는 것보다는 마치 멋진 사람들의 춤이나 그들의 외모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감상은 감상에서 그쳐야 한다. 클럽 써클에서는 ‘부비부비’가 없다. 한 때 클럽에서 추구하는 힙합 음악이나 하우스 음악에 구애됨이 없이 모든 클럽문화의 대표적 코드이자, 지금도 클럽에서만 할 수 있는 이 구애행위는 써클에서는 용납이 안된다. 이 곳에서 만난 P씨는 "여기서도 상대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용인이 되겠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검은 정장의 직원들에 의해 쫓겨날 수 있다"고 말한다. 써클에 온 사람들은 원래 이러한 구애에 관심이 없다. 단지 그들은 ‘이렇게 잘 나가고 잘난 저를 보세요’라고 외치는 듯 자신을 뽐낼 뿐이다. 써클에서 그들의 일탈은, 역시나 잘 나가는 자신의 부류들과 즐기기 위해서이지, 연인을 만들고자 오는 것이 아니다. 마치 상류층의 파티장을 연상시키는 듯하는 써클은 웨이터 박지성이 짝짓기를 시켜주는 호텔 나이트가 아니다. 그냥 서로를 볼 뿐이다. 여긴 자기를 보여주고 보고 싶어서 온 곳이다. 하지만 연인은 거부하는 대신 인연은 환영한다. 혹시나 우연찮게 아는 사람을 만나면 무진장 반갑게 인사를 해주는 것도 좋다. 이 바닥 패거리라는 걸 주변 사람들한테 보여주면 신분이 올라간다. 주변의 시선도 달라진다. 오직 자신의 배경과 외양을 보여주기 위한 곳, 써클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4. 얼마 전 어느 언론 매체에서 ‘이 시대 자식들의 로망은 부모 재산 상속’이라는 주제로 보도를 한 적이 있다. 치열한 경쟁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이 그런 것을 로망으로 여기는 오늘날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써클에 있다보면 그러한 마음은 자연스레 자신의 로망으로 형상화 된다. 분명히 놀러 온 곳이지만 마음 편히 놀 수가 없다. 기껏해봐야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180 여만원을 호가하는 이름 모를 와인을 아무렇지 않게 주문하고, 그리고 즉석에서 현금으로 계산하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연출되는 클럽에서 과연 보통의 젊은이들은 맘 놓고 놀 수가 있을까. 빈부 간의 위화감을 조성하고 마치 부자들만이 노는 디스코텍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써클. 입장객 중에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는 대학생 L씨. 프로 골퍼인 친구를 따라왔다는 그처럼 "여기에 오니, 열심히 돈벌어야겠다라는 생각 밖에 안든다. 괜히 우리 부모님은 뭐 하셨나 싶은 생각이 들고 힘이 빠진다"며 하소연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써클 같은 클럽은 어느 곳에나 있다. 홍콩 페닌슐라 호텔엔 디자이너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호사스런 클럽이 있다. 싱가포르엔 70층 빌딩 꼭대기에 휘황찬란한 클럽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옷을 사면 입고 갈 곳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엔 써클이 있다. 하지만 그게 꼭 써클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런 유행은 금세 지나가기 마련이다. 안 그래도 써클 같은 다른 클럽이 또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새 옷을 사 입고 거기로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흘끔거리고 살짝 춤을 출 것이다. 비록 이것이 사회적, 구조적 차원의 문제다, 빈부의 격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둥의 쓴소리를 들을지라도 이러한 장소는 그 나라와 시대를 막론하고 있어왔다, 아니 있을 수 밖에 없다. 단지 써클은 예전의 그것들과는 달리 그 특별한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의 연령이 다소 어리다거나 비록 부유층이 아니더라도 돈 5만원 정도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약간의 개방성을 가미한 정도일 뿐이다. 써클을 가지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얘기하는 것은 답이 절대로 안 나오는 문제를 붙잡고 푸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다. 아무리 왈가왈부해도 이러한 클럽이 엄연히 있고 그곳에서 마음놓고 놀 수 있는 젊은이들이 있는 곳이 우리가 사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동그라미를 뜻하는 써클이란 이름처럼 이런 건 돌고 또 돈다. 공간이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도 돈다. 다만 이러한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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