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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명예기자 erios@hanmail.net
이쁜 남자가 세상을 바꾼다..‘화장하는 남자’

◇ 직장인 김 씨의 새벽 의식

아침 햇살이 어둠을 살라먹을 무렵, 시계는 새벽 5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다. 직장인 김정남(29)씨는 일어나자마자 손으로 얼굴을 몇 번 문지른 다음, 바로 욕실로 향한다. 머리를 감고 폼 클렌징으로 꼼꼼히 세안을 한 뒤, 물기를 약간 적신 수건을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그 동안에 그는 가방을 챙기고 텔레비전을 켜서 아침 뉴스를 시청한다. ‘땡’하는 소리에 수건을 꺼내고 누가 봐도 뜨거울 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건을 허공에 이리저리 휘젓더니 돌연 얼굴에 갖다댄다. 그리고는 정성스레 손가락으로 수건을 꾹꾹 눌러댄다. 이 기묘한 행위의 이유를 물었더니 세안으로 인해 수축된 모공을 늘여, 화장수의 흡수를 돕기 위해서란다. 이후에도 그의 기묘한 행위는 계속된다.

스킨과 로션은 물론이요, 에센스를 골고루 바른다. 그리고 ‘스킨미스트(Skin Mist)라고 적힌 스프레이를 얼굴에 칙칙 뿌리더니 고급 화장품으로 유명한 L사의 로고가 선명한 남성용 메이크업 베이스를 얼굴에 펴 바르고 얼굴의 잡티를 너무도 ‘신기하게’ 가려주는 BB 크림과 남성용 컨실러로 마무리를 한다. 그는, 어떤 특별한 행사의 식전 의식을 거행하는 양 정성을 다해, 한편으로는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을 느끼게 만들 정도로 숭고하게 출근 준비를 마쳤다. 김 씨가 문을 열고 나간 시각은 아침 8시 10여분 정도, 따가운 여름 햇살이 막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면서 왜 자외선 차단제는 바르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여유롭게 미소를 띠며, 자신이 마지막에 바른 BB 크림이라는 것에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다고 대답했다. 양말을 신지 않고 출근한 적은 있어도 가벼운 화장은 잊어본 적이 없다는 김씨. 평범한 남자인 그가 원래부터 바쁜 아침에 ‘이러한 의식’을 행한 것은 아니었다.

김 씨가 피부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3년 전 취업을 준비하면서부터. 면접 시 깔끔하고 보기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시작한 피부관리가 취업 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종이 투자자들을 많이 만나는 증권 계열이다 보니, 자연스레 외모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귀찮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직장 동료 중에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피부관리실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한 회 시술에 몇 백만원 하는 피부과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는 비단 직장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대학생 김경식(25)씨의 가장 큰 고민은 칙칙한 피부색과 여드름 흉터. 대중 매체에서 광고하는 온갖 화장품에서부터 한방을 이용한 대체의학용 화장품까지 써 봤지만 피부는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거금을 들여 피부과 치료를 받기로 하고, 지금도 치료 중에 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50여만 원 정도가 드는, IPL이라는 광원 치료가 바로 그것인데 피부가 확실히 나아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대학생에겐 50만원이 거금이기는 하지만, 그는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서라도 한 달 더 치료를 받을 생각이다. 김 씨는 ‘주위 친구들은 다 피부가 좋아요. 같이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모두 제 얼굴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고 자신감도 잃었었죠’ 라고 말하며, 약간은 사치스러운 자신의 피부 관리의 이유를 대신했다.

▲남성들에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BB크림 제품들 ©레이디 경향 홈페이지.

◇ 화장하는 남자들

실제로 현재 피부 클리닉 전체 환자의 20~30%를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다.(Bes 클리닉 설문조사. 2007) 아는 사람들만 알고 철저한 예약제로 유명하다는 명동의 고급 피부관리 센터에도 이미 상당수의 남성들이 진출해 있다. 그리고 피부과는 물론이고, 전문 진료과목이 피부과가 아닌 병원에서도 피부관리실을 같이 운영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주위 시선을 의식하는 남성들을 위해 병원과 피부관리실은 고맙게도 남성 전용 관리실을 따로 만들 정도다. 그만큼 남성들의 피부관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이다.

이에 힘입어 화장품 회사도 바빠졌다. 2001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남성용 색조 화장품이 등장한 이후, 그 수요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니들은 그래라’는 식으로 건방지게 팔짱을 끼고 있던 글로벌 화장품 회사는 물론이요, 국내 화장품 회사들도 이 대열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미국의 월스트리트 증권맨들이 자주 이용하는 미국 맨해튼의 고급 호텔에서는 과다 피지를 흡수하는 기름종이며, 피지조절 파우더 그리고 ‘립밤’ 등이 남자 화장실에 비치되어 있다고 한다. 허리 라인이 잘록하게 들어간 양복을 매끈하게 차려입은 남성들이 파우더를 집어 얼굴을 톡톡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 이뻐져야만 하는 남성들

이 같은 변화를 일차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바로 대중 매체다. 근육이 울툴불퉁하고 키가 크고 어깨가 떠억 벌어진 배우의 시대는 갔다. 단지 그러한 배우들은, 얼굴은 잘리고 가슴팍과 허벅지만 나오는 속옷 광고용 모델이나, 영화 <300>과 같이 마초적 남성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TV에 나오는 남자 연예인들은, 그것이 화장빨이든 태생적인 축복이던 간에 상관없이 하나같이 피부가 깔끔하다. 심지어 얼굴이 심하게 못난 개그맨들마저 피부 하나는 깨끗하다. 고화질 HD 방송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에서 흉터는 물론, 자잘한 잡티조차 찾기 어렵다. 평범한 남자 시청자들은 ‘저거 다 화장빨이야’하고 손가락질 하면서도 뒤로는 거울을 보며 자신의 유전적 결함과 예전에 관리하지 못한 과오를 원망한다.

게다가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열연한 배우 이준기와 같이 이쁘게 생긴 연예인들의 등장은 이 불쌍한 남성들의 가슴에 치명적인 결정타를 날렸다. 이제 남성들은 권상우처럼 몸을 키우기에 앞서 먼저 권상우와 같은 깔끔한 외모와 깨끗한 피부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진정한 남자요’라고 외치면서 당당하게 웃통을 벗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얼굴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안간힘을 쓰는 그들을 위해 획기적인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은 물론이고, 2005년 한국에서 남성전용 명품 화장품 브랜드인 포부(4Voo)가 '옴므앤알엑스'라는 매장을 열고, 남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봤더니, 얼굴 각질 제거 스크럽부터 시작해서 컨실러, 피지 조절 파우더 그리고 남성 전용 브러쉬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이 열풍은 계속된다. 무슨 메이커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듣도 보도 못한 회사에서 BB크림과 같이 획기적인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남성들만의 화장법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제공하기도 한다. 이처럼 쉽고 빠르게 자신들을 꾸밀 수 있는 제품이 등장하고, 그 기회 또한 간편하고 다양해짐으로 인해, 남성들의 화장 열풍에 힘을 보태주는 것이다.

▲4Voo 오프라인 매장 옴므앤알엑스 ©<4Voo> 공식 홈페이지

◇ 남성성의 고수를 위한 여성성의 체득

앞에서 말한 것들이 남성들의 화장에 있어 하드웨어적 차원의 것들이라면, 우리가 속한 사회의 구조적 변화나 사람들의 의식의 전환은 소프트웨어적인 것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남녀의 가사와 육아 분담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고, 여성들은 이러한 ‘남녀 평등’의 순풍을 타고 급진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그들의 깃발을 꼽기 시작했다. 심지어 남성들을 위에서 교묘히 조종하는 ‘팜므파탈’의 여성이 속속 등장함에 따라 그들은 이제 예전의 가족과 가정에서 뛰쳐나와 당당히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항상 맘에 드는 여성을 선택하고 그들을 맘대로 부리기까지 한 남성들이 되려 선택의 대상이 된 것이다.

위기를 느낀 남성들은 이미 거대한 세력을 형성한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여성들만의 장점인 다정다감함과 이해심을 자신에게 적용하기에 이른다. 남성들이 그들 자신만의 남성성의 일부를 고이 접어두고 양성성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화장하는 남자가 시장을 바꾼다>의 저자 전양진 명지대 디자인학과 교수는 ‘자신의 남성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성성의 경쟁력을 갖춤으로써 남성성의 우월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전 교수는 ‘요즘 시대는 남성적인 힘, 근육 등의 전통적인 남성다움보다는 지식이나 정보, 네트워킹, 커뮤니케이션 등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다’며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여성스러움을 가진 남자가 경쟁력이 있는 사회가 됐다’고 진단했다.

요즘 여성들은 더 이상 건장하고 딱딱한‘오빠’들만을 선호하지 않는다. 가끔씩 그들의 복근과 어깨 근육에 열광하기도 하지만 정작 결혼은 약간은 어리숙하면서도 배려가 깊고 착한, 가능하다면 좀 더 잘생겼으면 좋았을 법한, '유재석’과 하고 싶어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사회는 남성의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힘보다는 실질적인 자본이나 이익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중시하게 되었으며, 이는 아직도 남녀 결혼의 조건 중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외모도 무시할 수 없다.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남성들 또한 그들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꾸며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만나면 그 사람의 내면을 파악하기에 앞서 일차적으로 외모로 그 상대를 따진다. 조금이라도 먼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깔끔하고 호감을 끌만한 외모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본래 여성의 세심함과 같이 다소 내적인 면에서의 ‘여성적인 남성’을 지칭하는 말이었던 ‘유니섹스’도 이제는 촌스럽게 들린다. 그 때만 해도 분명 여성성은 남성성을 꾸미는 수단 정도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이 시대의 ‘외모지상주의’와 그것이 맞물려 ‘메트로 섹슈얼’, ‘크로스 섹슈얼’과 같은 신조어를 만들기도 한다. 이 신조어들은 모두 여성들의 의상이나 머리 스타일, 액세서리 등을 하나의 패션 코드로 생각해 치장을 즐기는 남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단순한 외모 가꾸기를 넘어 여성들의 액세서리는 물론 의상이나 머리스타일, 화장까지 차용하여 자신을 꾸미는 남성들의 스타일을 말한다.

▲화장하는 남자 ©다음 까페 <연예인보다 이뻐지자>

◇ 남성들이여, 생긴대로 살지말자

그러나 이러한 ‘남성성의 위기’,‘남성성의 고수’ 등과 같은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외모 꾸미기’는 이미 오늘날 젊은이들의 대세가 되버렸다. 두꺼운 화장은 제쳐두고서라도 요즘은 쌍꺼풀 수술과 같이 다소 간단한 성형수술을 받는 남자들도 많다. 자기 PR시대, 개인 브랜드화 시대에서 예전에는 그것이 유난스러웠는지 몰라도 지금은 꼭 필요하다고 하는 이들도 많다. 실제로 요즘은 잘 생길수록 연봉도 높다고 한다. 2년 전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남자 중 평균 이상의 외모를 가졌다고 평가되는 사람은 평균 대비 4% 높은 임금을, 외모가 못생긴 사람은 평균보다 9% 낮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자료에서 사용한 '잘생김'의 기준이 다소 모호하기도 하지만 한 때 ‘유난스러웠던 것’들이 이제 ‘자기관리의 산물’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더 이상 이뻐야하는 쪽은 여성들만이 아니다. 이제 남성들이 '생긴대로 살자'며 떠드는 시대는 갔다. 남성들 또한 자신을 가꾸고 꾸밀 줄 알아야 한다. 연봉과 같은 물질적인 조건을 떠나서 무엇보다 남성의 일생을 놓고 봤을 때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 또한 원하기에 더욱 그렇다. 지금보다 더 잘나보일 수 있다면 그렇게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선택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그 과정를 통해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면 일단 성공이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은 아침에 가볍게 화장하는 남자들의 수가 꽤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몇 년 뒤면 아침 출근 지하철 안에서 급하게 손거울을 펴들고 파우더를 톡톡 치는 남성들의 모습을 볼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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