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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언젠가 터질꺼야
"우리 밴드하자." 영화 <즐거운 인생>에서 주인공 기영이 친구들에게 던지는 말이다. 단순히 음악을 ‘취미’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에겐, ‘그럴까’하고 되물을 수 있는 시답잖은 질문이겠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매우 심각하다. 그들처럼 음악을 제대로 즐기고, 적어도 한 때는 그것을 업으로 삼고자 했을 정도의 수준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비록 환기도 잘 안되는 구질구질한 지하 방에서 외국의 유명 밴드의 곡을 카피하고, 정말 가끔씩 자신들의 곡을 만들어 합주를 하는 정도라도, 그들의 열정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처럼 점점 나이를 먹고 자신이 직접 부양해야 할 입이 많아지는 때가 다가오면, 이 열정의 세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결국 아무도 모르게 그들의 밴드와 음악세계는 깨지고, 그 젊은 날의 경험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퇴색되어 버린다. 이 가혹한 ‘현실’의 운명을 영화 <즐거운 인생>은 과감히 뒤엎는다. 영화는 열정으로 현실을 초월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정작 영화 속 현실은 변한 것이 없다. 오히려 더 나빠졌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그 인물들을 움직이는 것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장경제의 논리가 아니라, 그 젊은 시절의 꿈이요 열정이다. 현실의 위협에 콧방귀를 뀌며 연주하는 그들. 여기 영화 속 밴드 ‘활화산’처럼 자신들만의 ‘즐거운 인생’을 찾으려 하는 젊은 밴드가 있다. 밴드의 이름은 ‘티라미스.’ 이들의 멋진 연주를 지켜보고 난 후, 리더인 이진우 씨와 어렵사리 대화를 나눴다. 만나서 반갑다. 밴드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이진우(이하 이) : 우리는 펑크를 기반으로 해서 멜로디 위주에 팝펑크, 이모펑크를 지향하고 있는 밴드다. 이진우(베이스. 24), 김루비(보컬. 20), 박승진(기타. 20)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얼마 전에 드럼이 나가는 바람에 지금은 드럼 포지션을 구하면서 밴드를 정비 중이다. 드럼이 있을 때는 주로 홍대 쪽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드럼이 구해지는 대로 다시 공연 일정을 잡을 것이다. ‘티라미스’라는 밴드 이름이 독특하다. 이름에 어떤 특별한 의미나 이유가 있는가?
밴드 이외에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밴드 활동을 유지해나가는 데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는가? 이 : 루비는 지금 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입학하기 위해 준비 중이고, 승진이는 백제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재학 중이다. 나는 제대 후, 다니던 학교에 자퇴를 내고, PC방 아르바이트와 밴드를 병행하면서, 지금은 루비와 함께 대학교 실용음악과를 목표로 학업에도 힘쓰고 있다. 보통 공연이나 합주에 쓰이는 돈은 나눠서 부담하는 편이다. 실제로 연주를 들어보니 상당한 수준에 있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나 아티스트가 있는가? 이 : 추구하는 장르는 펑크를 기반으로 한 모든 음악이라고 보면 된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hide, 엘레가든, The Used, No Use for a Name, Hi-standard, Ken yokohima, 아이언 메이든, 헬로윈 등등 너무 많아서 말을 다 못하겠다. 우리가 추구하는 장르인 이모펑크를 간단히 말하자면, ‘멜로디가 이쁜 펑크’라고 생각하면 된다. 같은 장르의 대표적인 곡으로는 요즘 CF 배경음악으로 유명한 솔직히 당신들이 추구하는 음악은 ‘배고픈 음악’이다. 대중에게서 제대로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펑크를 추구하는 이유는? 이 : 질문을 하는 당신이 연애를 한다고 치자. 그 연애의 대상이 너무도 좋아져서 결혼할 때 즈음에, 누군가 ‘넌 왜 그 여자를 좋아하냐’라고 물으면 당신은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있는가? 가장 정답에 가까운 답변이라면 ‘그냥’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연인을 만날 때마다 좋고 행복하듯이 우리는 합주하는 단 몇 시간이 그냥 너무도 좋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우리들만의 시간이요 세계다. 뭐, 연애처럼 가끔씩 멤버들끼리 싸우기도 하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웃음)
이 : 그것은 대세의 문제라고 본다. 우리나라 음악의 흐름은 미국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서 에미넴이나 50센트 같은 대형 뮤지션이 나옴에 따라 우리나라도 그 대세에 편승한 것이다. 또한 오늘의 상황이 있기까지, 90년대부터 힙합의 ‘랩’은 꾸준히 대중가요에 쓰였다. 이상한 댄스곡이라 하더라도 항상 랩은 있었다.(웃음) 그러한 시간을 거쳐 아마 대중의 귀에 익숙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락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다. 그 편견이란 것은 무엇인가? 이 :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내가 군대에 입대했을 때, 선임 병사들이 나를 둘러싸고 질문을 마구했다. 근데 그 중 병장 한 명이 ‘(입대하기 전에) 뭐하고 왔냐’ 이렇게 묻는 거다. 그래서 ‘밴드하다 왔습니다’ 라고 대답하면서 공연 사진을 보여줬더니 ‘너 뭐야! 야! 너 밖에서 뽕하다 왔지!’이러는 거다. 이게 락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 같다. 또한 락은 접할 수 있는 루트가 상당히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락이, 머리나 기르고 기타 하나 둘러멘 사람들의 음악 정도로 인식된 것이 아닌가 싶다. 홍대 근처에서 활동하는 많은 밴드들이 오버로 진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심지어 본래 자신들의 음악적 성향을 바꿔가면서까지 이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 그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우리는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매니아적인 밴드와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대중 없이는 밴드도 없다. 그러니 대중과의 어느 정도 절충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하는 장르도 ‘팝펑크’다. 어렵지만 대중적 코드와 매니아들의 코드를 함께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도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색깔을 바꿔가면서까지 오버로 진출하려는 것은 솔직히 ‘돈에 눈이 멀어서’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 만약에 내가 사는 곳이 일본이나 미국이라면 그런 고민은 안한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다. 일단 우리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려면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나.(웃음) 밴드를 해서 돈을 많이 벌자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음악을 하고 싶어서 음악적 성향을 바꾸는 것 뿐이다. ‘타협’이라는 말은 어떻게 들으면 참 부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괜찮은 어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떤 밴드라도 어느 정도 매니아를 형성하고 나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마련이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자신들의 음악을 성숙시키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약간 실례가 되는 질문이지만, 혹시 음악을 하면서 집안의 반대 같은 장애 요소는 없었나? 이 : 엄청 많았다. 보컬과 기타는 아직 20살이고, 실용음악과에 재학 중이거나 그곳을 준비 중이기에 차라리 나보다 낫다. 난 이미 군대도 갔다 왔고, 한창 공부를 해야 할 시기다. 군대를 갔다오면 현실 감각이 투철해진다는데, 나는 오히려 음악에 대한 열정만 길러가지고 나온 거 같다. 그래서 결국 다니던 학교를 때려 치웠다!(웃음) 솔직히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는 실용음악과에 입학하려고 공부하는 나를 적극적으로 뒷바라지해 주신다.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포기해야 할 만큼 음악을 할 이유가 있는가? 이 :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그냥’ 학교를 포기했다. 물론, 재학 중이던 학교를 다니면서 음악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그냥 하루종일 기타만 치고 싶었다. 정말이지 난 1학년 때 내가 홍익대학교 학생인 줄 알았다. 그만큼 오랫동안 홍대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지금의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밴드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보통 고등학교 때 스쿨밴드에서 시작해서, 군대 갔다오면 그냥 접어버리는 것이 일종의 패턴이다. 다들 현실적인 차원의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인데, 끝까지 자신의 열정을 지키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이 :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볼 때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신입생들도 밤을 새서 공부한다고 하더라. 그렇게 밤을 새고 학교를 졸업해서 취직을 하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인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열정은 식기 마련이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취미’라도 괜찮으니깐 꼭 했으면 한다. 미래에 대한 한탄은 그만 하고, 현실을 즐기면서, 제발 좀 젊은 사람답게 살았으면 좋겠다. 합주를 막 끝내고 피곤할 터인데, 어렵게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 혹시 앞으로의 계획이나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한다. 이 : 친구들 중에는 나를 보고 ‘생각없이 산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난 구체적인 계획도 있고 정말 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산다. 적어도 그냥 현실의 속도에 순응해가면서 살아가는 그들보다는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일단 나중에라도 후회는 안할 테니깐 말이다. 앞으로 계획은 뭐 군대도 다녀왔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클럽들을 돌며 공연도 할 것이고 녹음도 할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뭔가 하나는 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제발 자기가 좋아하는 밴드건 그룹이건 가수건 음반을 좀 사서 듣길 바란다. 요즘 동네 레코드 가게들 다 망해서 CD 살 곳이 없다. 돈 내고 CD를 사야 당신들이 좋아하는 사람들도 먹고 살고 힘내서 곡 하나 더 쓰고 더 열심히 부를 거 아닌가. 땅 파서 곡 쓰고 노래하는 게 아니다. 정말 돈이 없는 사람이라면, 돈 500원씩 내고 유료 서비스로나마 다운 받길 바란다.(웃음) 저마다 가슴에 두근거리는 꿈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현실이 너무 빠르고 무시무시하기에 기억해내지 못하지만, 결국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건 바로 오래 전 가졌던 순수한 열정이다. 영화 <즐거운 인생>은 이러한 젊은 날의 열정을 그린 영화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 감독마저 자신의 작품을 ‘불온한 영화’라고 한 것처럼 이 영화가 그리 현실적이진 않다. 청춘이라는 구호 아래 자유와 꿈을 좇아 방황하는, 특권 아닌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또한 그것을 가능케 하는 10대 혹은 20대가 등장하는 영화가 아닌 것이다. 이 아저씨들은 영화의 카피 문구처럼 ‘저질러 버린다.’ <터질꺼야>라는 그들의 타이틀곡처럼 결국 이 아저씨들은 20년만에 정말 터졌다. 이제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다. 바야흐로 하늘은 높고 말은 살 찌는 계절이다. 하지만 말은 살 찌는데 우리에게 하늘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아무리 높더라도 하늘은 언제나 우리 머리 위에 있다. 오래 전에 나온 책 제목처럼 '그래. 가끔은 하늘을 보자!' 분명히 우리는 영화 속 그 아저씨들보단 한참 젊으니깐.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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