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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왕 기자 wanglee@newsmission.com
[종교개혁이야기③] 개혁교회, 새로운 형태의 교회 아니다

본지는 10월 28일 종교개혁주일을 맞아 교회사에 나타난 종교개혁 이야기를 정리, ‘종교개혁의 배경’, ‘종교개혁자들’, ‘종교개혁의 의의’로 나눠 3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주]
① 종교개혁의 배경… 루터는 종교개혁을 의도하지 않았다
② 종교개혁자들… 루터, 츠빙글리, 칼빈
③ 종교개혁의 의의… 개혁교회, 새로운 형태의 교회 아니다


종교개혁은, 시작은 종교개혁이었지만 결과는 전사회적이며 전방향적인 개혁으로, 중세의 봉건적 잔재를 떨어내고 근세를 구분 짓는 하나의 이정표였다. 즉 종교개혁은 정치,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변화였으며, 근대 자본주의의 기반이 되는 사상적 바탕을 제공해 주는 인류사적인 사건이었다.

▲독일 보름스에 있는 루터의 동상
종교개혁이 지니는 역사적 의의

종교개혁에 의해 중세 기독교세계의 통일이 와해됨으로써 순조롭게 근대화의 길이 모색돼, 근대세계와 근대인이 탄생됐다.

이는 중세적 질서의 중심이 교회였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중세생활의 모든 것이 교회로부터 출발하고 교회와 관계돼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교회는 오늘날의 교회와는 전혀 다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세속의 봉건적 질서의 정점에 위치한 중세교회는 단순히 세속권력의 일부가 아니라 세속권력 그 자체였으며, 신적 질서의 표현이었다.

그 구체적 표현이 교황의 세계 지배였다. 그래서 중세의 서구 세계를 ‘그리스도교왕국’ 또는 ‘그리스도교제국’(Christendom)이라 말한다. 바로 중세사회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종교개혁을 하나의 종교적인 변화로만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종교개혁이 지니는 역사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종교개혁은 개인주의ㆍ민주주의와 함께 자유주의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종교적 관용을 초래, 발전시켰다. 1555년 아우구스부르그 의회를 통해 제후와 도시가 종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결정된 것은 개인주의와 민주주의에 적잖은 공헌을 했다.

둘째, 종교개혁은 프로테스탄티즘, 즉 근대 직업윤리와 새로운 금욕적 생활윤리를 탄생시켰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중산계층에 널리 파급돼 유럽 근대사회 발전의 중요한 정신적 지주가 됐다. 기존의 종교적 가치관으로선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노동의 가치가 인정됨으로써, 상인들의 이윤추구 또한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또한 상인계층의 성장은 이들과 연계된 제후세력의 성장을 북돋웠고, 나아가 교황권력의 쇠퇴를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강대한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데 주도권을 행사했다.

마지막으로, 종교개혁은 유럽을 문화적ㆍ경제적으로 구분했다. 종교개혁과 이후의 종교전쟁 결과 프랑스ㆍ이탈리아ㆍ스페인ㆍ서독일과 남독일의 일부ㆍ폴란드의 대부분 등 유럽의 태반은 가톨릭을 고수했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신교로 개종했다. 종교에 따른 지역차이는 문화적인 차이를 일으켰다.

종교개혁이 지니는 종교적 의의

종교적 의미에서의 종교개혁의 의의는 한 마디로 ‘사도적 교회의 회복’, 즉 ‘개혁’(Reform)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의미가 잘 반영된 것이 라틴어 ‘Ad fontes’, 영어로 번역하면 ‘Back to the sources’로, 기독교 신앙과 학문 전반에서 ‘고전(古典) 혹은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이 말을 종교개혁자들이 사용하게 되면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의미가 됐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성경’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개혁교회 곧 프로테스탄트 교회(Protestant Church)는 종교개혁을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떨어져 나온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아닌, 신앙의 전통을 이어가는 전통적 교회다. 그러므로 새로운 교회라는 뜻의 개신교(改新敎, New Church)는 사실 잘못된 표현인 것이다.

또한 종교개혁은 단순한 교리적 개혁운동(Reform)으로 그치지 않고, 영적 부흥운동(Revival)의 성격도 함께 동반했다. 당시의 교회가 교리적으로 많이 탈선해 있었기 때문에 영적으로도 쇄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칼빈의 후계자 베자(Theodore Beza)는 “교회는 개혁됐으므로 항상 개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의 교회도 육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언제든지 타락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490년 전의 사건이 들려주는 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여, 스스로 개혁정신을 갖고 부단한 자기개혁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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