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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하'가 말하는 원더걸즈의 음악
원더걸즈 1집 정규앨범
1. 내게도 말해주세요 전국이 원더걸즈로 뜨겁다. 어느 매장이나 식당을 불문하고 모든 스피커에서는 그녀들의 < Tell Me >가 흘러나오고, 인터넷 UCC의 대부분은 그녀들의 춤을 따라한 영상으로 가득 차있다. 이제는 MBC 9시뉴스(10월 30일)에까지 단독으로 보도될 정도니 말 다했다. 그녀들이 공연을 하러 가는 곳마다 으레 함성이 터져 나오고 혈기 왕성한 남성팬들이 대부분이라서 그 현장은 마치 신병훈련소를 방불케한다. ‘뾰뾰뿅’ 하는 인트로와 함께 그녀들이 어깨를 ‘살랑살랑’ 거리기 시작하면 지켜보는 남자들의 가슴은 ‘덜컹덜컹’ 거린다. 그래서인지 그 유명한 후렴구, 보컬의 음성을 묘하게 믹싱해 놓은 ‘테테테테테 텔미’라는 부분이 나올 때쯤이면 흥분한 남성들의 육중한 하모니로 인해 순식간에 그곳은 ‘우정의 무대’가 돼버린다. 복고풍의 디스코 리듬에, Stacet Q의 < Two of Hearts >라는 노래를 샘플링한 이 곡은 원더걸즈의 앙증맞은 춤 동작과 기막힌 조화를 이루어 전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따지고 보면, < Tell Me >는 곡 자체보다는 춤을 위시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시킨 곡이다. 만약, 그들의 뮤직비디오가 없었다면 혹은, 박진영이 아닌 다른 사람이 프로듀싱을 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 Tell Me >는 투스텝의 편안한 리듬을 기초로, 예쁜 전자음과 자칫하면 날아갈듯 한 멜로디의 가벼움을 전자 드럼의 무거운 템포로 보완한, 균형이 잘 잡힌 곡이다. 게다가 강한 음색 위주의 싱글 타이틀곡인 <아이러니>와 달리, 상대방의 구애를 조르는듯한 비(鼻)음과 가벼운 발성으로 구성된 보컬은 이 곡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박진영이 한국에서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가지는 판타지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데 가장 능한 기획자라는 사실이다. 이미 박진영은 박지윤과 아이비 등을 통해 남성의 본능을 자극하는 노래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남자들이 어린 소녀에게 느끼는 어떤 매력, 대상에 대한 성적욕구와 보호본능을 자극하게 만드는 교묘한 심리를 정확하게 겨누었다. 2. 준비된 엔터테이너, 그 양날의 검 이런 의미에서 그녀들은 엄밀히 말하면 엔터테이너지 가수는 아니다. 예전에는 분명히 가수는 가수였고, 배우는 배우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엔터테이너’라는 말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앞에 ‘만능’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기에 이른다. 이 엔터테이너들은 각종 연예방송에 종횡무진 활동하며 자신들의 이름값을 키워나갔다. 원더걸즈는 이렇게 완벽한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기 위해 준비된 그룹이다. 얼핏 봐도 한참이나 어려보이는 이 소녀들은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부터 ‘연습생’의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쳤다. 그 뼈를 깎는 노력 끝에 그녀들은 ‘샤방샤방’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들 앞에서 ‘살랑살랑’ 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엔터테이너들은 그게 강점이자 한계다. 그들의 음반에서 독특한 맛이나 가치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나 영상의 힘이 강한 요즘 같은 때에 대중은, 과도하게 몸을 떨거나 허리를 꺾어버리는 것과 같은 파워풀한 춤이나 아니면 원더걸즈와 같은 애교를 원하지, 색깔 있는 음악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일단 원더걸즈의 1집 정규앨범인 < The Wonder Year >는 그 귀여운 소녀들이 지하 골방에서 기타 코드를 일일이 쳐가며 만든 곡의 집합체가 아니다. 게다가 그들 자신의 입으로 부르는 가사 또한 전문 작사가나 박진영이 써준 곡이 대부분이다. 단지 그 소녀들의 역할은 곡을 만든 이들의 심정에 더욱 가깝게 몰입을 하고, 대중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 The Wonder Year >가 절대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앨범 전체를 놓고 본다면, 거대 기획사와 명프로듀서의 작품답게 매우 깔끔하고 곡마다 구성과 믹싱의 자연스러움 또한 부드럽다. 노래를 부르는 원더걸즈 멤버들의 가창력 또한 수준급이며, 그것이 그들의 실력의 결과든지 명프로듀서의 믹싱의 결과든지 간에 곡의 분위기와 전체적인 음색이 잘 어울린다. 그러나 한 곡, 한 곡을 따져가면서 세심하게 듣노라면, 게다가 거기서 독특한 색깔을 찾으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엔터테이너 아이돌 그룹의 1집 정규앨범’의 한계를 느끼게 될 것이다. 3. 앨범을 말해주세요 원더걸즈 정규 1집 앨범 < The Wonder Years >의 컨셉은 한 단어로 ‘레트로(Retro)’이다. 레트로란 ‘회귀’, ‘돌아감’ 등을 뜻하는 말로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인테리어, 패션, 디자인 등 널리 퍼져 있는 하나의 복고 풍조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레트로란 70,80년대의 패션이나 분위기를 오늘날 대중의 구미에 맞게 재탄생시키는 표현 양식을 말하는데, 이는 한 때 인기를 얻은 기성곡들을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컴필레이션(헌정) 앨범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즉, 80년대에 대한 완벽한 레트로를 표방한 앨범의 타이틀 < The Wonder Years >는 당시에 대한 헌사와 더불어 앞으로 펼쳐질 무대에 대한 그녀들의 의지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래서 레트로가 컨셉인 앨범답게, 원더걸즈의 1집 앨범은 마치 예전의 롤러장이나 디스코텍에서나 들어봤음직한 음악의 리듬과 멜로디로 가득 차있다. 다만, 기존의 컴필레이션 앨범과 다른 점은, 원래 있던 기성곡을 리메이크한 수준을 뛰어넘어서, 순수 창작곡에다가 복고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악적 요소(투스텝 리듬과 트로트적인 멜로디)를 적극적으로 차용했다는 것이다. 레트로를 근간으로 한 타이틀곡은 의상부터 안무까지 80년대의 반짝이 의상과 팝 문화를 완벽하게 재연함으로써 10대들에게는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동시에 30,40대에게는 80년대의 이미지를 놀라운 방식으로 재경험하게 하는 등 모든 세대가 오감을 통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 그들의 목표라고 한다. 일단 지금의 상황으로 본다면 어느 정도 성공은 한 것 같다. 앨범 전체의 구성은 첫째, 둘째 곡이 신나는 템포의 곡이라면 그 뒤의 몇 곡들은 잔잔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가 다시 신나는 분위기의 곡, 이런 식으로 구성의 강약을 조절했다. 처음에는 계속 듣다가도 총 13곡 중에서 11번 트랙이 나올 때쯤이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물론 듣는 대중으로 하여금 지루함을 덜게 해주려는 의도에서 이러한 구성을 선택한 것이겠지만,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앨범의 A 사이드는 차분한 노래, B 사이드는 빠른 템포의 노래들로 몰아넣는, 이른바 70년대 비틀즈의 앨범 구성 형식이 더 신선해 보인다. 첫 번째 곡 < I Wanna >는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노래답게 은근히 힘이 들어간다. 엇박자 리듬의 조화 속에 누군가가 ‘Yop’ 이라는 일종의 추임새를 내뱉는다. 랩이라고 하기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는 내레이션이 의외로 곡에 잘 어울린다. 뒤이어 나오는 <이 바보>는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이성에 대한 아쉬움의 노래다. 노래의 멜로디나 구성은 별다른 특징이 없지만 역시 연습생의 과정을 거친 그녀들의 훌륭한 가창력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이렇게 청순한 그녀들이 < Headache >에서 돌연 질투의 화신으로 돌변한다. 그래서인지 노래 또한, 보컬이나 멜로디가 처음에는 앙증맞다가 갑자기 심각해진다. 대체 남자가 어떻게 속을 썩여서 두통이 그리도 심한지 금방이라도 그 남자에게 가서 뺨을 후릴 태세다. 그리고 나서 그녀들은 앞의 분위기를 이어 <뭐 어때>에서 딴 남자를 찾기 시작한다. 적극적인 구애를 뜻하는 가사와 격렬한 리듬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노래보다는 오히려, 멋들어지는 랩으로 곡을 피쳐링(featuring)한 남자 랩퍼가 누구인지 더 궁금해지는 곡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나 분위기는 < Wishin on a Star >에서 급반전된다. 피아노곡으로 유명한 <소녀의 기도>를 연상시키는 이 노래에서 소녀들은 또다시 무릎을 꿇고 하늘의 별들에게 간절히 기도를 올린다. 자신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선사해달라고 빌고 또 빈다. 노래 자체로 보면 약간 사운드가 가벼워 공허한 느낌도 있으나, 앨범 전체 중에서는 비교적 듣기 편안한 곡이었다. 기도하다가 무릎에 쥐가 났는지 그녀들이 벌떡 일어난다. <가져가>에서 그녀들은 다시 적극적인 구애를 마구 보낸다. 이쯤 되면 슬슬 앞의 노래들마저 헷갈리기 시작한다. 뭘 가져가라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계속 '가져가’라고 외쳐대는 이 노래는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별로’인 곡이다. 어지간하면 찾을 수 있는 곡 자체만의 색깔은커녕, 이 노래를 부르는 소녀들도 마치 억지로 부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정말이지 노래의 작곡가를 만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곡을 썼는지 알고 싶을 정도다. 왔다 갔다 하는 앨범의 분위기 속에서, 그래도 ‘진주’가 있다면 10번 트랙인 < Goodbye >와 11번 트랙인 < Bad Boy >라고 할 수 있겠다. 축구 경기를 예로 들자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은 엄청난 강팀과, 마치 태어나서 처음 공을 차는 듯한 약팀이 맞붙는 경기가 있을 때, 전후반 90분 동안 꼭 한 번은 그 약팀에게도 기회는 온다고 한다. 앨범의 후반 대미를 장식하는 10번과 11번 트랙, 이 두 곡은 상대적 열세의 상황 속에서 약팀에게 찾아온, 천운의 기회와 같은 노래들이다. 냉정하게 말해, 랩을 담당하는 멤버를 제외하고는 원더걸즈의 보컬에는 각기 자신만의 음색이 없다. 똑같은 보컬 트레이너에게서 훈련을 받고, 같은 기간, 같은 장소에서 연습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들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도대체 누가 어떤 부분을 부르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이 두 곡의 노래와, 하나 더 포함하자면 <아이러니>는 멤버들 간의 음색이 분명하게 구분된다. 그녀들이 데뷔 전에 어떤 노래를 좋아했는지 의문이지만 아마도 두성(성대에서 낸 육성음을 머리에서 울린 소리)이 많이 쓰이는 파워풀한 노래를 추구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가수들에게는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장르의 노래가 있듯이, 아마 그녀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는 위에서 말한 분위기의 곡들이다. 실제로 <아이러니>에 비해 다소 쉬워 보이는 < Tell me >에서 라이브를 할 때마다 소위 ‘삑사리’를 자주 내는 것도, 이런 파워풀한 발성에 익숙한 그녀들이 비성과 가성을 섞어가며 부르는 < Tell me >에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데서 오는 현상일 것이다. 4. ‘옵하’들이 기다릴게 사실 거대 기획사의 아이돌 그룹이, 그것도 1집 앨범에서부터 그들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찾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따른다. 그들은 악기를 배우기보다, 춤과 노래를 배우고 대중들 앞에서 웃는 법을 먼저 배운다. 위에서와 같이 이렇게 말을 해도 2집과 3집 또한 똑같을지도 모른다. 예전의 많은 소녀 그룹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이가 들어 자연스레 암묵적인 해체를 하고 영화를 찍고 그리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쇼핑몰을 차리는 정도로 귀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국민동생 원더걸즈’가 그러한 비운을 맞는 것을 희망하지 않는다. 당장에 곡을 쓰는 것이 무리라면 2집부터는 적극적으로 작사라도 해봤으면 한다. 그녀들에게 가수라는 직업이, 다른 연예 직종으로의 수월한 진출을 위한 발판이 아니길 빈다. 해외에서는 아이돌 그룹 출신의 멤버가 엄청난 인기를 끌다가 후에, 자신만의 음악으로 입지를 다지는 경우가 꽤 많다. 항상 반항아로만 보이던 로비 윌리암스(Robbie Williams)가 그랬고, 이상한 파마머리로 촌스러움의 극치를 달리던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Randall Timberlake)가 그랬다. 이미 대중의 인기를 한껏 업은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만의 음악을 선보이는 것이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아이돌 그룹 출신의 가수들에게만 허용되는 크나큰 장점이다. 여기서 바라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찾아서, 엔터테이너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이른바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뮤지션’ 혹은 ‘아티스트’로 성장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원더걸즈가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발언을 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태껏 보아왔던 아이돌 그룹의 전철은 항상 그래왔다. 다만 우리가 하는 말은 노파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유야 어쨌든, 현재 전무후무하게 거의 전 세대를 아울러 인기를 얻고 있는 그녀들의 가능성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얼마 전, 한양대에서 원더걸즈가 공연을 할 때, 한 남학생의 피켓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남학생이 그러했던 것처럼, 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있을 그녀들을 기대하며, ‘원더걸즈야, 이 옵하도 기다릴게!’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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