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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하 기자 sarah@newsmission.com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국민 건강 ‘위해(危害)’할 것

최근 새로 출범할 정부가 종부세 대상 완화ㆍ금산분리 완화ㆍ신문법 폐지 등 시장주의에 입각한 정책 기조들을 천명하고 있는 가운데, ‘건강보험에 대한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이 비쳐지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당연지정제, 과연 폐지될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7일 보건복지부 업무 브리핑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적자 해결을 위한 방안을 복지부에 주문했다.

이와 관련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건강보험에서 하루 13억 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건강보험 재정안정화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수위는 일단 논란의 대상이 되는 당연지정제 폐지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 정부가 건강보험 적자를 해소할 뚜렷한 묘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이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의료제도의 문제를 지적해 관심을 끌고 있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식코'의 한 장면.

게다가 꾸준히 당연지정제 폐지와 단체자율계약제 도입을 주장해 온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이 당선자의 시장주의 정책 노선에 힘입어, 이를 실현키 위한 적극적 움직임에 나설 예정이어서 한동안 논란이 계속되리라는 예측이다.

주수호 의사협회장은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 “좌파정권이 강제해온 획일적 의료사회주의 정책을 걷어내고 새 희망의 싹을 심어야 한다”며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단체계약제를 도입하는 등 수가결정 구조의 개선작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 단체는 이명박 당선자가 후보 시절 정책질의서를 통해 당연지정제 폐지에 찬성했다는 점을 들어 계속적으로 압박을 넣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당연지정제 폐지하면 어떤 문제 생기나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전 국민이 어떠한 의료기관이든 이용할 수 있다는 전제가 무너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특정 의료기관이 특정 의료보험에 가입된 환자만을 선별적으로 진료하겠다고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는 궁극적으로 의료서비스의 양극화를 가져오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단적으로 부유층이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동안, 저소득층은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유층의 경우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비용의 보험에 가입하면서 의무적으로 가입할 필요가 없는 국민건강보험에서 빠져나가게 되고, 이는 의료재정의 악화로 이어진다.

또한 국민건강보험이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면, 보험수가를 통한 의료비 통제가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의료기관들은 현재 낮은 수가로 유지되는 국민건강보험 대신 높은 수가를 보장하는 민간보험으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벌써부터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다. 단적인 예로 병원 입장에서는 생명을 좌우하는 심장수술보다 쌍꺼풀 수술을 시술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국민 건강에 직결되는 수술의 경우 본인부담금이 낮게 책정된 까닭이다.

따라서 일선 병원에서는 수십 명의 스태프와 고가의 장비를 사용하는 이러한 수술이 시행될수록 재정적자가 커진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건강보험에 대한 민영화가 진행된다면, 결국 개개인의 의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미국도 골머리 앓는 민영 보험

당연지정제가 폐지되고 민영화가 됐을 때 발생될 문제점에 대해서는, 현재의 미국 보건체계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의료서비스를 시장 기능에 맡긴 대표적인 국가인 미국은 민간 보험과 의료보호제도라는 두 가지 축으로 의료체계가 운영된다.

3억만 명의 미국인 중 1억8천만 명 정도가 민간 보험에 가입돼 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18일자 이코노미스트지(誌)는 “4천7백만 명 정도가 의료보험 수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밝혔다.

또한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미국의 의료비 때문에, 연간 의료보험 비용으로 4인 가족 기준 평균 1만2천 달러가 지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계 지출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난 4년간 미국의 의료보험 비용은 경제성장률보다 큰 폭으로 증가해 현 GDP의 16%를 차지하고 있다.

급상승한 의료보험 비용은 미국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해 직원에 대한 의료보험을 지급하는 기업의 비율이 2000년 69%에서 2007년에는 60%로 줄어들었다.

때문에 의료보험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만은 선진국 중 최고에 이른다. 지난해 11월 1일 미국 ‘Commonwealth Fund’가 발표한 ‘Toward Higher-Performance Health Systems: Adults' Health Care Experiences in Seven Countries, 2007’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의 34%가 자국 의료제도의 변화를 원했다.

미국을 포함해 영국ㆍ독일ㆍ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와, 영연방인 캐나다ㆍ호주ㆍ뉴질랜드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미국인은 의료 접근성ㆍ의료비ㆍ진료 대기시간ㆍ의료사고 경험 등을 묻는 항목 전반에 걸쳐 가장 높은 불만도를 표했다.

이 같은 여론을 반영한 듯 현재 한창 진행 중인 미(美) 대선 후보들의 주요 공약 역시 의료보험 개혁에 대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앞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6%가 가장 중요한 선거 이슈로 의료보장 문제를 꼽은 바 있다.

미국의 보험제도는 비단 환자들에게만 불리한 것은 아니다. 최근처럼 의료 관련 소송이 끊이지 않는 환경에서 많은 미국 의사들은 의료 행위 자체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의사의 경우 소송에서 승소했다 할지라도 소송 자체에 연루됐다는 사실 만으로 보험사의 기피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의사가 보험 가입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병원에 취업하거나 개원하는 것이 불가능 해, 사실상 의료 활동을 할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이처럼 여러 가지 문제점 때문에 미국에서조차 대대적 개혁의 대상인 민영 의료보험이 이 당선자의 임기 동안 실시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린다.

당연지정제란

흔히 의료보험이라고 부르는 건강보험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의료서비스에 있어 국가보험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환자가 의료기관 이용 시 진료비의 일부를 부담하면 나머지는 의료기관이 보험자에 청구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 경우에는 건강보험공단이 보험자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독일ㆍ일본 등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실시되는 이 유형은 개인이 예측하기 어려운 의료비 부담의 위협으로부터 사회구성원을 보호하기 위해, 적용대상자 전부를 강제로 가입시키는 방식이다.

이 체제 아래서는 비영리법인인 보험자가 자격관리와 보험료 징수, 급여 관리 등을 관리하게 돼, 환자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어 저소득층이나 서민에게 유리한 제도다.

이처럼 국내 모든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과의 독점적 계약 아래서 진료를 진행하게 된다. 즉 의료기관이 특정 보험의 가입자만을 선별적으로 골라서 진료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를 ‘당연지정제’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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