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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뉴스서포터 erios@hanmail.net
[인터뷰] ‘못’가를 거닐다 - 밴드 못(MOT)

▲밴드 못. 이언(좌)과 지이(우)©밴드못 홈페이지

새까만 세상

연초부터 새까만 세상이다. 태안반도는 새까만 기름이 유출되어 푸른 바다를 뒤덮었고 사람들의 가슴 또한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새까만 진압복을 입은 이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막아서고 게다가 대한민국의 얼굴이라던 남대문은 새까맣게 타버려 복구 불능의 화상을 입어버렸다. 아무리 날씨가 맑아도 우리 머리 위의 하늘은 새까맣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요새는 유독 코미디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다. 연예인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대중을 웃기려 들고, 허경영이라는 기인도 모자라 이제는 ‘빵상’이라는 이상한 아줌마까지 화제가 된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우리를 처절히도 웃겨주던 이런 프로그램도 ‘다음 이 시간에’라는 자막과 함께 끝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래도 웃자’라는 말은 참으로 모순이다. 슬프고 짜증나는 상황에서의 억지웃음은 오히려 더 고차원적인 슬픔의 촉매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울 때는 시원스레 울고 그래도 무언가 모자란다면, 그 눈물이 마를 때까지 계속해서 우는 게 낫다. 위로 또한 마찬가지다. ‘에이, 다 잘 될 거야’라는 무심한 낙관에 기초한 충고 같지 않은 충고보다 ‘사실, 나도 너처럼 몹시 아프단다’는 동병상련의 위로가 훨씬 나을 때가 있다.

위로의 음악, 위로의 밴드 - 못(MOT)

진실어린 위로로 가득 찬 음악과 2인조 밴드. 우리가 알고 있는 못은 정말 지나칠 정도로 고집이 센, 그것도 몇 안 되는 ‘아티스트’들 중의 하나다. 사실, 거대 자본력과 상업성에 짓누르는 이 현실에서 ‘우리는 이런 음악만 하겠노라’하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인지 못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대중의 눈은 그다지 의식하지 않은 채, 몰래 골방 속에서 조용히 음악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것도 숨죽여 흐느끼면서.

이러한 개인적인 편견 때문인지 못과의 인터뷰가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게다가 인터뷰 당일 날씨는 못과의 첫 만남이라는 이미지에 맞지 않게 짜증나게 지독히도 맑았다. 그러나 다소 딱딱할 것만 같았던 대화는 마치, 옆 집 형과 담소를 나누는 듯 자연스러웠다. 그들이 은근히 유머 감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가 책상을 마주하고 본 못은 ‘의외로’ 밝았다. 서로가 만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치 영롱한 물의 이미지가 떠오르듯, 못은 그들의 음악만큼이나 인간적으로 맑은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밴드 이름으로 맑은 물의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하지만 넓고 광활한 바다나 강과는 거리를 두고 싶었고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못’이에요. 은밀한 숲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런 이미지 있잖아요.”

시냇물과 같이 흐르는 음악과는 거리가 있고, 정체된 느낌을 전하려는 못.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그룹명의 이미지와 이들의 음악적 지향점까지도 잘 표현하고 있는 음반의 자켓은 서양화를 전공하고 있는 이언(30)의 동생이 제작한 것이다. 다소 음습한 분위기와 신비함을 표현한 자켓을 보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이들의 순수한 의도는 이미 성공한 셈이다.

2001년경, 오랫동안 원맨 밴드로 활동한 이언이 “같이 음악을 할 동료를 찾는다”는 인터넷 구인광고를 낸 이후 이를 본 지이(27)가 선뜻 응하면서 탄생한 못. 2002년 월드컵 울산 개막시 음악 조연출, 음악칼럼니스트, 사운드 컨설팅 등의 경력을 가진 이언과, 그룹 EN419 등을 거쳐 재즈 기타리스트 정재열로부터 직접 사사를 받은 뛰어난 이력을 가진 지이가 뭉쳐 만든 못의 음악은 단숨에 마니아층을 형성할 만큼 탄탄한 사운드로 구성되어 있다.

‘전생에 만났어도 같이 밴드를 했을 것’이라던 못은 ‘뮤지션’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공대생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음악은 표피적으로 따지자면 ‘기계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또한 각기 구분해놓고 보면 제멋대로일 것 같은 음악적 요소들이 하나의 곡 안에서 정말 멋들어지게 들어맞는다.

“그냥 무심코 나날을 보내다가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면 하나하나 그것을 기록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곡을 작업할 때. 그것들을 하나하나 반추해서 곡을 쓸 때 사용하는 거죠. 작업 초반부터 그 요소들은 이미 우리 음악의 재료가 되는 셈입니다. 어떻게 보면 철저한 계산과 치밀함 속에서 탄생되는 것이죠.”


그들이 이야기하는 ‘위로’

하지만 철저한 공식 속에서만 사는 공학도의 이미지만 풍긴다면 오늘날의 못은 없었을 것이다. 줄타기를 하는 듯 아슬아슬한 긴장감, 디지털을 아날로그화 시키는 기묘한 재주, 그리고 그 속에서는 뿜어져 나오는 안락함.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끼리의 조화 속에서 발견해내는 새로운 조합. 예를 들어 2집에 수록된 노래인 <나는 왜>는 곡을 주도하는 콘트라 베이스가 반음씩 하강하는가 하면 곡 전반에 음계 밖의 음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 곡을 처음 들을 때는 ‘이거 음이 왜이러지’하면서 자신의 씨디 플레이어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이 의아함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요소들이 곡 안에서 묘하게 조화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특히 음악에 있어서 ‘아름답게 느껴지는 지점’을 추구하는 편인데요, 그래서 일부러 불균형을 가미해서 그 지점을 탐사해 나갑니다.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요소, 이를테면 디지털과 아날로그, 파격과 정형성간의 균형을 통해 서로 다른 소리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거죠. 나아가 불균형과 균형간의 균형,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즐거움이랍니다.”

이와 더불어, 그들의 음악은 그 내적으로도 상당한 힘과 깊이가 있지만, 곡에 스며든 가사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위태롭기만 한 우리들을 꼭 붙들어주며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가사와 그것을 나직히 암송하는 듯한 보컬 스타일. 스스로의 노래를 ‘버텨주는 사람들과 견뎌주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라고 정의한 못. 두 멤버 모두 멘사(MENSA)의 회원이자 공학도인 것을 감안하면, 차가운 냉철과 이성으로 무장한 것만 같은 그들의 머리에서 어떻게 이런 섬세한 가사가 나온 건지도 의문이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역시 갑자기 떠오르는 영감을 미리 기록한데서 나온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앨범 타이틀 또한 그 영감들 속에서 나온 것들 중에서 일종의 논평회 같은 것을 통해 뽑은 것이죠. 그리고 가사는 본래 제 스스로의 이야기입니다. 간간히 들려오는 피드백(Feedback)으로 짐작컨대 특히, 예술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현실과 이상과의 갈등 속에서 많은 힘을 얻었다고 하더군요. ‘꿈을 계속 붙들게 해준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음악인으로서의 책임과 보람을 동시에 느낍니다.”

예술과 현실, 그 사이에서

철처하게 자신의 욕심에 드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못. 남의 안목보다는 자신의 안목이 중요하며 정서적인 측면을 따지면서도 다른 미학적 요소를 가미한다는 것이 그들 음악의 지론이다. 비록 그 미학이란 것이 타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미미한 것일지라도 자신들의 음악에 도움이 된다면 상관없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고답적이고 달리 말하면 독불장군이 따로 없다. 그러나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이 미학의 요소가 그들의 글로벌한 사운드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아닐까싶다. 실제로 지난 5월, 잠실 실내 체육관에서 열린 헤드윅(Hedwig) 공연에서 감독이자 주연 배우인 존 카메론 미첼(John Cameron Mitchell)이 못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는 그 날 공연에서 한국어 가사를 완벽히 외우고, 발음도 거의 완벽에 가깝게 감정을 싫으면서, 한복(여성용)을 입고 노래를 불렀다. 그는 구글을 통해 못의 노래를 알게 되었고, 곡을 다운로드 받아서 노래를 익히고 연습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지구 반대편의 유명 뮤지션마저 반해버리고 마는 못의 음악.

이렇게 글로벌한 사운드를 구사해내는 한국 밴드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애초에 서구의 밴드였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 섞인 의문이 든다. 더 많이 알려져야 하는 음악과 밴드가 그러하지 못한 냉철한 현실에서 그들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또한 의문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시장은 끼어들기 쉽지 않은 시스템이에요. 전보다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상당한 자본력이 요구되는 것과 같이 제한적인 측면이 많죠. 그래도 이 상황에서 우리 자신들만의 다짐이 있다면, 앞으로도 음악과 관련되지 않은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과 같은 노래로만 음악을 한다고 했을때, 현실적으로는 안하는 것이 정상이죠.(웃음) 하지만 우리는 자신들의 다짐을 끝까지 지켜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쉬움과 기대

언제나 만남의 막바지에는 아쉬움이 뒤따른다. 그들이 마지막에 말한 현실의 차디찬 제한도 그렇거니와 그들과의 만남 자체가 끝이라는 사실이 취재를 하는 우리로 하여금, 서글프게 했다. 서글픔, 이 감정은 우리가 항상 느껴왔던 감정일지도 모른다. 항상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정작 우리는 스스로를 방벽에 가두고 가식과 위선으로만 남들을 대한다.

요즘은 자동차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린다. 기차는 시속 300킬로미터로 내달리며 비행기는 시속 900킬로미터로 날고 있다. 웅웅, 쾅쾅, 위엄이 서린 속도를 내며 점점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그렇게 점잖은 위로는 누구의 말만 따라 오히려 사치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우리들에게는 효과가 빠른 독설이나 ‘괜찮아 잘 될 거야’ 라는 일방적인 자기 긍정의 충고가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감기가 걸렸을 때 삼키는 알약과 다를 바 없다. 알약을 많이 먹으면 감기는 내성이 생긴다. 내성이 생긴 감기는 더 가혹하게 우리를 괴롭힌다. 처음부터 효과 빠른 약은 제쳐두고 천천히 휴식을 취하면서 우리의 몸이 병을 이겨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앞에서 말한 자동차나 비행기처럼 빨리 갈 필요는 없다. 단지 우리는 시속 4킬로미터로 천천히 못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된다. 익사할 걱정도 없다. 우리가 못의 음악에 입수하는 것은 그들의 노래에서 위로를 얻고 우리의 꿈을 붙들기 위한 것이지 인생을 포기하려고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이렇듯, 우리들의 꿈을 붙들어주는 못과 그들의 음악이 있기에 새로운 기대 또한 샘솟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항상 못의 음악을 기대하는 우리들 또한 그들의 꿈인 음악을 여전히 꼭 붙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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