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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서] 다리는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줍니다
그 섬에서 - 79
다리는 두 가지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순 우리말이다. 하나는 사람을 비롯하여 짐승이나 곤충 또는 새의 몸에 달려서 땅을 디디고, 걷거나 뛰거나 하는 일을 맡는 부분으로 영어로는 leg, 한자로는 족(足)을 말하고, 또 다른 하나는 개천이나 강의 양 둑 사이에 다닐 수 있게 걸쳐 놓은 것으로 bridge, 즉 교량(橋梁)을 말한다. 몸의 일부인 다리와 강이나 바다, 또는 계곡으로 벌어진 간격을 연결하는 다리는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 영어에서는 leg 과 bridge 가 처음부터 서로 연관이 없는 다른 어원으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말에서는 두개의 다리가 같은 어원에서 시작하여 중간에 의미가 갈라졌지만 아직도 같은 글자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나처럼 국어학자가 아닌 비전문가의 생각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다리를 건너면서, 그 다리 아래 흐르는 강물이나 바다나 계곡을 내려다 볼 때마다 같은 다리면서 모양 없이 굵고 털이 많은 내 다리를 만져 보곤 한다. 곤충을 포함한 조류, 파충류, 다족류 등 모든 동물의 다리는 걷거나 뛰거나 점프를 하면서 이곳저곳 장소를 옮겨 다니는 역할을 한다. 어류는 다리는 없지만 지느러미가 다리역할을 한다. 움직이지 않을 때는 땅에 다리를 딛고 몸의 균형을 잡고, 휴식을 취하거나 비상이나 점프를 위한 다음 동작을 준비 한다. 주로 날개로 움직이는 새들도 다리가 없으면 이륙이나 착륙이 불가능 하고, 또 땅에 다리를 딛고 취하는 휴식 없이 계속 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다리야 말로 식물계와 동물계를 나누는 가장 분명한 외적 특징이다. 이동(移動)이 동물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다리가 바로 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동함으로써 먹이를 취하고 자기를 해치는 자를 피하고, 동료들과 놀이를 하며 즐기기도 하고 안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동하여 무리를 지음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집단에서의 역할을 확인하고 집단의 안전을 유지한다. 이동함으로 새로운 곳을 찾아가고 더 나은 곳으로 옮겨간다. 인류역사를 보면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가 유럽과 아시아로, 그리고 바다를 건너 뛰어 아메리카로 호주로 이동하면서 인간의 역사가 진행되어 왔다. 그리하여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고 대륙을 횡단하고 대륙에 정주하면서 문명세계를 건설했다. 이제는 지구를 뛰어넘어 우주를 향하여 탐험을 계속하는 중이다. 이동의 수단인 다리(leg)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걸어서 건너기 힘든 곳을 연결하는 다리(bridge)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이 다리를 만듦으로 해서 이동이 훨씬 신속해지고 편리해졌다. 그러나 다리의 역할은 다리 위로 사람이나 물건이 오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다리가 놓임으로 인해 떨어져 있던 두 지역이, 그 두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의 삶이 하나가 되었다. 1917년 한강 다리가 생기면서 경기도의 변두리 포구였던 영등포와 노량진이 서울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오늘날 한강의 기적은 한강에 놓여 진 다리를 말 함이다. 그 기적이 강남을 서울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다리가 없었다면 김포는 아직도 포구를 가진 어촌 마을로 그대로 있을 것이고, 영종대교가 없다면 인천 국제공항 역시 상상하기 힘들다. 다리는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고 사람과 물건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개울을 건너 이웃마을을 잇는 다리가 없었다면 아직도 두 마을은 서로 잘났다고 뻐기며 경쟁하며 다툴 것이다. 다리로 인해 서로를 방문하게 되고 사람과 정보와 물건이 오가게 되면서 경쟁보다 이해가 더 커지게 되었다. 다리로 인해 서로간의 공통분모가 확장된 것이다. 다리야 말로 나눔, 이해, 소통, 화합, 통일의 상징이며 수단이다.
내가 살고 있는 신안군에는 830여개 섬이 있다. 그 중 사람이 사는 섬은 70여개이고 중심은 면사무소가 있는 13개의 섬과 무안군에서 연결된 지도읍이다. 지난 15년 사이에 놓여 진 자은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를 잇는 3개의 다리 덕분에 4개의 섬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목포와 압해도를 잇는 압해대교가 작년에 개통되면서 압해도는 신안군보다는 목포시의 일원이 되어버렸다. 내가 살고 있는 우이도의 면사무소가 있는 도초도와 이웃 섬 비금도를 잇는 서남문대교가 1996년 가을에 개통되었다. 다리로 연결되기 전까지 직선거리로 1키로 남짓한 거리지만 배를 통해 건너 다녀야 했고, 바람이 불거나 파도가 높을 때는 그나마 다닐 수가 없었다. 코앞에 있는 섬인데도 걸어서는 갈 수 없는 먼 거리였다. 도초에는 없는 병원 서점 소방서가 비금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생김새가 조금 다를 뿐 도초나 비금이나 비슷하다. 비금에 있는 교회 노래방 주점 해수욕장이 도초에도 다 있고, 도초에 없는 극장 목욕탕 찜질방 PC방은 비금에도 없다. 비금의 특산물을 천일염 시금치 쌀 병어라고 하지만 포장만 다를 뿐 도초에서도 꼭 같이 생산되는 도초의 특산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도초 사람들이 비금을 이야기 할 때는 입을 먼저 삐죽거리고, 비금 사람들이 도초 이야기를 할 때는 코웃음을 먼저 띄운다. 비금도 사람은 늘 비금도초라 했고 도초도 사람들은 반대로 모두 도초비금이라고 했다. 진짜 인물과 착한 사람과 정말 맛있는 것과 경치 좋은 곳은 모두 우리 섬에 있고, 별 볼 일 없는 것과 사기꾼과 고약한 것은 모두 건너편 섬에 있었다. 도초 사람들은 비금 사람들이 너무 영악스럽고 고집이 세다고 ‘억지 비금’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도초 사람들은 뒷심 없고 물렁하다고 ‘물개 도초’라고 불린다. 비금 사람들에게 도초는 비금에 비해 면적이 절반 밖에 안 되는 작은 섬이고, 비금에서 노력해서 개발한 천일염과 섬초라는 브랜드로 판매하는 시금치 시장을 공짜로 잠식해 먹는 얄미운 이웃인 셈이다. 비금 사람들은 도초를 비금도초로 한 통속에 넣는 것 마저 불쾌하게 생각한다. 도초 사람들은 비금도에 있는 병원에 가기 위해 위험하고 불편한 뗏마를 기다려 타기보다는 차라리 목포로 나가곤 했다. 뱃길로 5분 거리인 이웃 섬 병원보다 2시간 배를 타고 목포 병원으로 가는 게 마음이 훨씬 편했단다. 눈앞에 보이는 섬을 몇 십 년 동안 바라만 보면서 한 번도 건너가보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그러다가 1996년 다리가 완공되었다. 이제는 하루에 수백대의 자동차가 오가고, 그 자동차의 서너 배 되는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다닌다. 비금에 있는 병원이지만 환자의 절반은 도초 주민들이다. 식당, 마트, 카센타, 여관, 관광지 모두 비금 도초 구분없이 이용한다. 이제는 비금, 도초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수 백 년 동안의 경쟁, 무관심, 시샘, 마음의 거리가 다리가 생기면서 사라졌다. 그것이 다리(bridge)의 진정한 역할이고 의미이다. 사람의 다리(leg)도 원래는 그런 의미를 포함하여 다리라고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비금도와 도초도를 잇는 다리 중간에 '전망 좋은 곳' 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표지 하단에는 영어로 ‘View Good Place’라고 친절하고 용감(?)하게 쓰여있다. 다리의 정상부에서 바라보면 다도해로 떠오르는 아침 태양을 바라볼 수 있고, 남지나해 수평선상으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을 말한 것이다. 그 다리를 바라 볼 때마다 나의 다리도 서로 흉을 보는 이웃과 이웃, 틈이 벌어진 사람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이해와 믿음을 전하고 꿈과 애정을 나누게 하는, 그리고 가끔 한 번 씩은 땅을 딛고 서서 전망이 좋은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그런 다리가 되고 싶다. 그것이 발음과 어원이 같은 다리의 원 의미 아니겠는가?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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