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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제신 장로 / 무등산공유화재단 이사
[그 섬에서] ‘집배원 배달 축소’와 브랜드 가치
그 섬에서 - 80

▲마당에서 잡초를 뽑고있는 아내 지정희 권사. ©뉴스미션

1970년대 초부터 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 경영학 석사)가 유행했다. 영리나 비영리 조직에 관계없이 관리자 위치에 있거나 관리자가 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필수 코스였다. 1970년대 중반, 당시 국내 5대 선사(船社)중 한 해운회사의 중간관리자였던 필자도 경영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MBA를 취득했다.

2년 동안의 야간대학원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유익한 배움이었다. 경영대학원 과정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관리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조직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객관화해서 드려다 볼 수 있게 되었고, 또 문제의 정확한 분석이 바로 문제 해결의 포인트임도 알게 되었다. 또한 재무제표를 볼 수 있게 되어 그 후로는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통해 그 조직의 재정상태가 얼마나 건전한지, 장사를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 것도 큰 유익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경영학의 원시 시대나 마찬가지였다. 경영학이라고 하기 보다는 경영기술이라는 게 더 옳은 이야기다. 기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경영대학원 첫 시간 강의에 기업의 목적은 ‘영속적 발전’이라고 교수님이 정의했다. 이익의 사회 환원, 소통, 고객만족, 사회 정의, 소명헌장, 서비스정신 이란 용어가 나오기 전 시대였다. 마케팅을 판매라고 배웠던 시절이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가 인사와 재무를 담당하는 부서라고 했다. 지식과 정보, 쌍방향 소통, 유통업이란 단어도, 세계화에 대한 컨셉도 생소하던 때였다.

한마디로 ‘Once upon a time in Korea’의 경영학이었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다행이지, 만일 그때 배웠던 것을 잊지 않고 그대로 고집했더라면 필자가 근무했던 회사나 조직은 벌써 거덜 나고 말았을 것이다.

지난 5월 말, 마을 이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군(郡)의회에서 낙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정주(定住)를 돕기 위해 섬 생활에 필요한 쌀, 전기, 가스와 같은 생활필수품을 지원해주기로 한 조례가 통과됐다면서, 우선 쌀을 배급해 준다며 우리 섬의 실제 거주 주민을 조사해 달라는 전화였다.

며칠 후 쌀이 들어왔다. 연령 성별에 관계없이 실제 거주 주민 1인당 1개월에 12.5㎏을 준해서 3개월분이 배급되었다. 우리 부부도 75㎏의 쌀을 받았다. 품질이 좋은 쌀이었다. 지난해 가을 도초 들판에서 추수하여 배급하기 3-4일 전에 도정한 쌀이었다. 며칠 후 농협 마트에 갔더니 똑 같은 쌀을 팔고 있었다. 뜻밖에 나온 공짜 쌀이어서 다들 좋아했지만 입을 삐쭉거리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섬에 주민등록을 걸어놓고 가끔 들락날락 하는 사람에게까지는 그나마 입을 다물었지만, 1년에 한 차례, 여름 미역 맬 때만 들어오는 사람이 자기 쌀을 챙겨놓지 않았다고 불평할 때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쌀 배급은 필자가 섬 주민이 되어 얻는 두 번째 혜택이다. 첫 번 것은 2년 전부터 시행되는, 섬 주민들을 위한 선임(船賃)할인 제도다. 선표를 구입할 때 신분증만 제시하면 5천원을 초과하는 금액은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 그 후 선표를 살 때마다 선택받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

쌀 75㎏은 우리에게 적은 양이 아니다. 우리 부부는 지난해 봄부터 현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손님이 찾아 올 경우에나 백미 밥을 먹는다. 1년을 먹고도 남을 양이다. 3개월 후에 또 쌀 배급을 할 때는 우리는 받지 않겠다고 출장소장에게 이야기 해 놓았다. 쌀 보다 전기세나 가스요금을 지원해 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입을 삐쭉일 필요 없이 섬에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만 혜택이 가지 않겠는가.

한 달 후인 6월 말, 도초면 우체국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까지 매일 하던 우편서비스를 7월부터 격일제로 바꾼다는 것이었다. 매일 집배원을 보내기에는 우리 섬의 우편물량이 너무 적고, 전남체신청에서 집배원 사례로 지원해주는 예산이 삭감되어 할 수 없이 격일제 서비스를 하니 이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소위 CEO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모든 행정서비스도 경제성 원칙으로 조정되고 있으며, 손실(?)을 발생하는 부서나 상품(?)은 과감하게 삭감하거나 삭제한다는 것이었다. 정부기관 뿐 아니라 지방차지단체에서도 낭비적 요소를 줄이고 경제적 조직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시작 되고 있다고 한다. 말이 구조조정이지 내용은 예산 삭감과 인원 감축이다. 그러나 인원과 조직을 슬림화 한다고 해서 기존에 제공하던 서비스까지 줄인다면 진정한 구조조정이라고 할 수 없는 법이다. 규모(조직이나 인원, 기업체라면 자산이나 수익)는 줄더라도 기존의 효과와 서비스(기업체라면 이익)는 최소한 변함이 없어야 그것이 진정한 구조조정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섬에 들어오면서부터 매일 일간 신문을 우편을 통해서 받아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매일 보내고 받는 우편물도 적지 않고, 그 중에는 긴급한 것도 있고 외국에서 오는 것도 있다. 또한 섬에서의 화물수송은 우체국택배가 유일해서 모든 생산품이 우체국을 통해 들고 나는데, 격일 서비스로는 난감한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뿐만 아니다. 풍랑주의보가 떨어져서 뱃길이 끊기거나 공휴일로 우체국이 문을 닫는 날이면 일주일 분 우편물을 한꺼번에 받는 경우도 있다. 우리 섬 마을의 집배원은 우편물이나 우체국 택배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다. 섬 주민들의 일상에 필요한 약방, 수퍼, 농협, 방앗간, 면사무소 일 등을 심부름 해 주는 것도 집배원 몫이다. 그것이 격일제로 바뀐다니 끔직하다. 동네 할머니들이야 별 관심도 없다.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우편물이 없으면 없는가 보다 하면서 사는 분들이다. 따라서 우리 섬에서는 필자가 제일 아쉬운 사람일 거다.

전남체신청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발전까지는 아니지만 기존의 서비스 질과 양이 더욱 퇴보하고 불편해지는 것에 대한 지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섬 주민의 정주를 위해 식량을 무상 배급해 주는데 다른 국가기관에서는 기존 서비스를 삭감함으로 생활불편을 초래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기관 간의 상호 모순되는 정책에 대한 지적, 그리고 행정서비스를 어떻게 경제성의 원칙과 손익의 관점으로만 계산할 수 없으니 기존의 매일 집배원 서비스를 그대로 유지해 달라는 요청의 서한이었다.

일주일도 못 되어 회신이 왔다. 민원에 대한 신속한 회신을 보내주는 우리나라 행정기관의 서비스 정신에 감사하면서 전남체신청장이 보내 준 편지를 읽었다.

‘집배원 배달 서비스가 축소 된 것 미안하다. 우리 섬과 같은 낙도의 경우는 정규 집배원이 아닌 마을 주민과 위탁 계약을 맺어 집배 서비스를 해 오면서 인건비 예산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우리 마을의 경우에는 거주인 수와 일일 평균 배달 물량이 적고 우편 이용료 수입 또한 거의 기대할 수 없다. 할 수 없이 배달 횟수를 줄이게 되었으니 양해해 달라. 차후 인구가 늘어나고 우편 사용량이 늘어나면 다시 원상으로 회복하도록 하겠다.’는 내용 이었다.

체신청장의 친절한 설명이 아니더라도 우체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필자도 MBA를 취득했지 않은가. 손실을 극소화 하고 이익을 극대화 하는 효율적인 관리를 왜 모르겠는가. CEO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고등학생 아들이 수학문제를 풀어달라고 했을 때나 아내가 싱크대에서 물이 새는 걸 고처 달라고 했을 때, 나보다 시간 당 임금이 적은 가정교사나 파이프 수리공에게 부탁하라면서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더 값나가는 것(?)에 투자했지 않은가.

체신청장의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이해와 함께 두려움(?)이 찾아왔다. 앞으로 우편 물량이 늘면 배달횟수를 늘이겠다는 것은, 우편 물량이 지금보다 더 줄어들면 배달 횟수도 더 줄이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지 않은가. 사흘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그러다가 섬 생활이 너무 불편해서 섬사람들이 모두 뭍으로 떠나버리면 ‘손해 보는 장사 끝’ 하고 만세를 부를 것 아닌가.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아들의 수학 문제를 함께 풀어 주는 것 보다 더 귀하고 비싼 아버지의 투자가 있을까. 물이 새는 싱크대 밸브를 교환해 주고 아내 앞에서 빙그레 웃을 수만 있다면 그날 하루 직장을 결근하는 것과도 바꾸지 않겠다.

섬에 들어와서는 많이 달라졌다. 일주일에 한번씩 2㎞ 떨어진 산골짜기 우물에 가서 생수를 떠 온다. 20ℓ들이 플라스틱 통을 지게에 지고 요즘 같이 무더운 날 찔레와 갈대숲을 헤치며 산길을 오르고 내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도시에서는 배달까지 포함해서 생수 한통에 5천원이다. 아내는 날마다 한 두 시간 마당 잔디밭에서 잡초를 뽑는다. 그 시간에 아내가 연재 칼럼을 쓰면 원고료 2만원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다.

날씨가 좀 선선해지면, 우리 부부는 비파나무와 매실 나무에 뿌려줄 퇴비를 만들기 위해 예초기로 풀을 베고 건너섬 양계장에서 닭똥을 긁어온다. 한 달 동안 수고해 봐야 퇴비 100㎏을 만들기 힘들다. 농협에서 20㎏ 퇴비 한 부대를 1900원에 팔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투자하는 이 시간과 에너지를 결코 낭비나 손실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자신이 흘린 땀과 수고가 만들어 주는 건강, 기쁨, 자유, 성취감, 자연과의 소통, 내일을 향한 기대감을 어떻게 금액으로 계산하겠는가. 올림픽 8관왕이 된 미국 수영 선수 펠프스의 브랜드 가치가 1조원이 넘는다 하고, 우리의 자랑 마린 보이 박태환의 브랜드 가치도 4천억원이 넘을 것이라 하니 말이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금메달 한 개의 실제 제작비는 15만원 안팎이다.)

낙도에 제공되는 작은 행정 서비스, 그나마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니 서글프다. 이 귀한 서비스를 제작비가 아닌 브랜드 가치로 계산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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