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전체기사
시론&논단
칼럼
연재
특집기획
테마리포트
기자수첩



> 오피니언 > 시론논단 크게  작게  프린트  보내기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
[시론] 촛불 집회, 기독교에 말을 걸다

▲촛불행진에 나선 목회자들의 모습©뉴스미션

지난 여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슈는 단연 ‘촛불 집회’였다. 그동안 사회 주요 이슈가 있을 때 종종 시민들은 시청 앞을 중심으로 촛불을 들고 모여서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고, 문제 해결을 위해 관계 당국의 대책을 촉구하였다. 그런데 이번 촛불 집회는 문제의 발단이 ‘장로 대통령’의 정책 결정과 관련되어서 한국교회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교회마다 촛불 집회에 대한 입장 차이로 교인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어느 교회에서는 ‘촛불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유황불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순수한 동기로 집회에 참가한 그 교회 일가족이 다른 교인들로부터 심한 따돌림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촛불 집회에 대해서는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게 되고, 교회 게시판에 글을 올릴라치면 관리자에 의해 삭제돼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촛불 집회’ 문제는 교회 안 토론 부재의 대표적 사례가 되고 있다.

대개의 한국교회에서는 민감한 정치 문제나 사회 이슈에 대해서는 교회 안에서 토론하지 말 것을 권면하는 분위기이다. 이런 주제를 놓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흔히 감정싸움으로 옮겨 붙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민감한 주제를 놓고 대화를 할 때, 토론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고, 또한 토론에서 지게 되면 인격 모독을 당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토론하기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자기가 이야기하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고, 그런 사람이 윗사람인 경우에는 아랫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경우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웃어른들에게 뭐라고 말은 못하고 끙끙 앓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이번 촛불 집회에 대해서 토론을 금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하나 짚어가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이, 이번 촛불 집회의 발단은 광우병 우려를 안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문제였다. 광우병 발병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에 있으나 발병률 자체는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발병률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한번 걸리기만 하면 치료가 불가능한 높은 치사율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이해를 촉구한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마음이 놓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사스’(SARS)로 더 널리 알려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처음에는 ‘괴질’이라고 하여 불안에 떨게 하던 이 질병은 나중에 독감보다 치사율이 낮고, 몇 가지 예방 수칙을 잘 지키면 발병률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점차 불안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일부에선 아직도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는데, 발병율도 매우 낮은 쇠고기를 가지고 촛불집회를 하는 것은 ‘사치’라고도 얘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보기를 들어 우리가 먹는 수돗물이 깨끗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수돗물을 먹지 못하겠으니 고급 생수를 공급해달라고 했다면 이것은 말 그대로 사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쇠고기 문제의 경우, 국민들의 불안한 마음이 채 진정이 되기도 전에 그것도 다른 나라의 경우보다 더 불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진행한 것에 대해 시민들이 납득하지 못해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쇠고기 수입 문제를 그렇게 서둘러 결정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찾기 어렵다. FTA와 관련해서 쇠고기 문제를 하루속히 타결할 필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먼저 국민들을 납득시키는 것이 순서였던 것이다.

파이의 크기를 키우면 나눠먹는 양이 많아지는가

FTA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한국 교계가 서로 다른 입장에 따라 양분되어 왔기 때문에 어느 것이 성경적인 답변인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분명하게 답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 정부의 성장 기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느냐 하는 것이다.

현 정부의 입장 또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말처럼 파이의 크기를 키우면 나눠먹는 양이 많아진다고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파이가 커진다고 단순히 각 사람에게 돌아갈 분량이 많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것은 어떤 기준에 따라 파이를 나누느냐에 달린 문제이다. 기준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약자에게 돌아갈 파이는 결코 커지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말처럼.

그렇다면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는 입장은 성장 우선 정책보다는 성장은 좀 더디더라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줄일 수 있는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그러한 정책을 펴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반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영국의 의료보험 제도나 유럽 국가들의 사회보장 제도는 2차 대전 직후에 마련된 것이다. 돈이 많이 있어서 그런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병을 치료받지 못하거나 돈이 없다고 해서 인간다운 삶조차 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한 제도를 만든 것이다.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넘어서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번 촛불 집회가 사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광우병 우려가 있는 쇠고기를 결국 내가 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촛불 집회를 일으킨 것이다.

사람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것이고, 이러한 이해관계가 국민 대다수의 이해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결국 공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시민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 약자와 소외된 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과 관련된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벗어나 보다 넓은 ‘우리 모두’에 대한 공평과 공공의 영역으로 옮겨가야 한다. 성장이 더디고 나한테 오는 이익은 부족하더라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체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교회는 현존하는 세속 가치관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에 대하여 성서의 가르침을 외치고 이를 실천하는 예언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예언자는 대세를 따르는 자가 아니다. 대세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면 예언자는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비판 없이 대세를 따르기보다 어떤 것이 성경의 정신을 따르는 것인가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사회에서 성공하고 최고가 되라고 가르치기보다 힘들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고 뿐만 아니라 더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고 약한 사람을 배려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만 한다. 이것이 오늘날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더보기
네팔의 아름다운 풍경
야구 좀 짱^^
더보기
빈민촌을 향하신 주님의 사랑...
3인의 여성 선교사의 감동의...
[남아공] 나미비아 ABBA세...
[뉴질랜드] 더니든에서..
[인도] 영어교육에 대한 법...
자유게시판 /우수블로그추천 /포토에세이 /UCC마당 /독자여행기 /즐거운 요리 / 라이브폴 / 기사제보
회사소개  |  광고 및 제휴문의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  sitemap
등록번호(등록일) : 서울아00078(2005.10.05) | 발행인 : 윤규한 |  Copyrightⓒ뉴스미션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2번지 CCMM 빌딩 11층 TEL: 02-761-7022 / FAX: 02-761-7071 발행일 : 2005-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