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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서] 나는야 특별한 축복을 받은 ‘오월이’
그 섬에서 - 81 ![]() 나의 형제자매는 모두 열하나지만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아빠는 기억에도 없다. 내가 태어나서 40여 일 동안 젖을 먹여주고,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펴준 엄마의 인자한 모습이 가끔 바람결에 스쳐 지나 갈 뿐이다. 헤어질 때 나를 쳐다보면서 눈물을 글썽이던 엄마는 아직도 고향에서 잘 있는지 모른다. 고향과 엄마를 떠나서 처음 타보는 승용차와 배를 타고 섬에 들어오던 날, 당시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을 생각하면 내가 너무 바보였던 것 같다. 그때 겁에 질려 오줌을 쌌던 일은 내 생애의 수치다. 그나마 난생 처음 바다를 보고 배를 타고 갈매기 울음을 들었던 것은 배 멀미 중에서도 나를 신나게 해주었던 추억이다. 나를 데려온 분은 마음이 따뜻하고 예의가 바른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다. 누구보다도 약속을 잘 지키고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분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좋은 것이다. 나는 IQ가 썩 높지 않아서 어떤 상황이나 사물, 또는 사람의 얼굴이나 음성을 머릿속에 입력시키는 것도 힘들지만, 한번 입력된 것을 수정하기는 더 힘들다. 그들은 매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교회에 간다. 아직도 깜깜한 신 새벽에 현관문을 열고 나온 할머니가 나를 쓰다듬어주면서 ‘오월이 잘 잤니?’ 하고 인사를 하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혼자 바깥에서 밤을 보냈던 어둠속에서의 공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할머니는 나보고 일찍 깼다고 하지만, 사실은 나는 방안에 불이 켜지고 화장실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일어난다. 그 시간이 매일 새벽 거의 일정한 시간이고 또 나는 귀가 밝기 때문에 일어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교회로 간다. 한 시간 가량 교회 아랫집 친구들과 놀고 있으면 할머니가 ‘오월아’하고 부른다. 할머니를 따라 집으로 돌아와서 아침을 먹는다. 식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영양가와 칼로리를 계산해서 만든 고급 영양 사료다. 아침 식사 시간도 정확하지만 식사량도 정확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하루를 분주하게 보내는 분이다. 아침 8시와 오후 3시에는 선착장에 나가서 오고가는 사람들 짐을 들어주기도 하고 우편물을 받기도 한다. 물론 나도 그 시간에 선착장에 따라 나간다. 그들은 거의 매일 일정한 시간에 책을 읽고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날씨가 더워 지기전이나 오후에 해가 질 무렵 할머니는 한 시간 정도 마당 잔디밭에서 잡초를 뽑는다. 나는 이 시간이 가장 즐겁다. 할머니가 내 차지이기 때문이다. ![]() 나는 할머니가 너무 좋다. 나 뿐 아니라 우리 종족은 절대로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모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는 2년 후에 환갑이 되는 나이지만 아직도 피부가 곱고 얼굴도 예쁘다. 그러나 내가 할머니를 좋아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할머니가 날 사랑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처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많이 알고 있지 않다. 꼬리를 흔드는 것, 고개를 갸우뚱 하며 처다 보는 것, 사람들이 스킨십이라고 하는 몸으로 비벼대는 것, 그리고 아프지 않게 깨무는 것 밖에는 모른다. 가끔 킁킁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그것은 내가 너무 좋았을 때 나도 모르게 나오는 소리다. 잡초를 뽑는 할머니 곁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할아버지는 종종 나를 땅바닥에 뒤집어놓고 내 몸에 붙어있는 진드기를 떼어준다. 나는 숲속을 돌아다니고 풀밭에서 딩굴기 때문에 내 몸에 진드기가 많이 옮겨 붙는다. 진드기 때문에 몸이 근질근질해서 짜증 날 때가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손이나 발로 진드기가 붙어있는 부분을 긁어대는 것뿐이다. 그러나 사타구니나 겨드랑이 또는 귀에 붙어 있는 진드기는 속수무책이다. ‘진드기가 싫으면 숲이나 풀밭에 가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숲길을 걷고 풀밭에서 뒹구는 그 즐거움과 해방감을 진드기로 인한 가려움과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할아버지는 내 몸에서 진드기를 잡아 죽이는 도사다. 콩알만큼 큰 것은 잡아서 밟아 죽이고 작은 놈은 손으로 떼 내어 손톱으로 눌러 죽인다. 진드기가 톡 하고 배가 터져 죽는 소리를 들으면 야구 시합에서 안타를 친 것 같은 쾌감이 느껴진다. 이럴 때 누어서 꼬리를 흔들며 할아버지 손을 상처 나지 않을 만치 깨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감사와 애정의 표시이다. 이 섬에 들어와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내가 처음 개발한 해수욕이다. 물이 빠진 간조 때 울퉁불퉁한 갯바위에 나가면 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가 있다. 햇볕에 데워진 물은 미적지근하다. 나는 이 웅덩이에 들어가서 몸뚱어리를 물에 담그고 목만 내놓고서 해수욕을 즐긴다. 대한민국에서 나처럼 해수욕을 즐기는 자가 사람 포함해서 얼마나 될까? 날 이곳에 데려와 주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감사한다. 가끔 할아버지를 따라서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가 수영하는 걸 보고 개헤엄이라고 쳐다보는 것 같아 비상시에만 하려고 한다. 또 하나 좋아하는 것은 강구 잡아먹기다. 바닷가에는 갯강구가 많다. 바퀴벌레 같이 생겼지만 몸집이 더 크고 길다. 강구는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인기척이 나면 도망가는데 얼마나 재빠른지 모른다. 재밌는 것은 도망가다가 절벽이나 낭떠러지를 만나면 그대로 몸을 던져버리는 것이다. 이 마을에 와서 갯강구를 처음 보았다. 웬만한 민첩성으로는 갯강구를 잡기 힘들다. 지금도 놓칠 때가 많다. 그러나 내 몸이 이 정도 민첩하게 된 것은 갯강구를 잡는 훈련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갯강구가 특별히 맛있는 것은 아니다. 무슨 영양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갯강구를 잡아서 아삭아삭 씹어 먹는 맛이 싫지는 않다. 그러나 꼭 맛 때문에 강구를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 갯강구의 민첩성을 배우기 위해서는 이놈들을 잡아먹는 것이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이다. 사람들도 정력을 얻기 위해 물개를 잡아먹지 않는가? ![]() 이곳 섬마을엔 사람들이 자주 가지 않는 마세장불이라는 모래사장이 있다. 길이가 250m, 폭이 150m 정도의 경사가 완만하고 모래가 고운 1급 해수욕장이다. 이렇게 넓은 해수욕장에서 혼자 뛰놀면서 뭉게구름과 수평선을 바라보기도 하고 갈매기를 쫒기도 하는 즐거움을 어떻게 뭍에 사는 동료들의 물고 뜯는 놀이나 장난감을 굴리는 재미에 비하겠는가? 아무리 장식이 화려하고 깔끔하고, 환경이 안전하고 청결하며 생활이 편리하더라도 그곳이 시멘트와 화학 소재와 페인트로 꾸며진 구조물 안이라면 그곳에서 재롱부리며 사는 걸 나는 삶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소위 주인 잘 만나 호강하며 편하게 산다는 동료들에게 묻고 싶다. ‘낮에도 침침한 울창한 숲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밤하늘에 영롱한 별들 사이로 떨어지는 별똥을 본적이 있는가?’ ‘철석 거리는 파도소리에 잠을 못 이룬 적이 있는가?’ ‘산길에서 갑자기 독사를 만나 어깨 털이 쭈뼛 거린 적이 있는가?’ 시멘트 성(城) 밖에 진짜 세상이 있고 진짜 삶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동료들이 나는 한없이 불쌍하다. 잠자리가 아무리 편안하고 달콤하더라도 그곳에서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다면, 나는 이슬에 털이 젖고 내 몸에 흙이 묻더라도 바람소리를 듣고 갯내음을 맡을 수 있는 한데서 잘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바다 끝 수평선 밖으로도 이어져 있고, 또한 지구는 셀 수 없이 많은 우주 공간에서 하나의 작은 행성이며, 우리의 모든 시간과 역사는 억 만 광년 우주 역사에서 단 한 순간의 눈 깜박임을 깨우쳐 주는 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면, 나는 그곳을 택하겠다. 인적이 없는 바닷가에서 해지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천상천하 유아독존’ 시간이 정지된 지구 밖에 나 홀로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영리하다고도 하고 미련하다고도 한다. 우리도 사람들같이 IQ가 높은 친구도 있고 내가 보기에도 미련한 친구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한번 가 본 길은 거의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모양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냄새로 기억한다. 도시에서와 같이 움직이는 것이 많지 않거나 내가 분별할 수 있는 냄새의 범위를 넘어서는 인공적인 화공품의 냄새만 없다면, 거의 100프로 내가 왔던 길을 되찾아 갈 수 있다. 필로폰이나 헤로인 같은 마약품의 냄새도 구분해 낼 수 있는 훈련받은 동료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지난 8월 초순, 섬에 피서객들이 찾아왔을 때 일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집에서 2km 정도 떨어진 매실 밭에 풀을 베러 가는 길이었다. 갯바위와 모래사장을 지나면 갈대와 칡넝쿨이 무성한 숲길이 나온다. 서 너 차례 할아버지를 따라 다녀왔는데 이제는 그 길은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가 곁에 있어서 심심치 않고, 나는 집에 있는것 보다는 산길을 뛰어다니는 게 좋아서 따라간다. 그러다가 뭔가 나도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기여하고 싶어서 내가 숲길을 앞장서서 가기로 했다. 내가 앞장서 가면서 갈대 잎을 헤쳐 놓으면 뒤따라오는 할아버지 바지가 이슬에 젖는 걸 조금이라도 예방해 줄 수 있고, 또 하나는 할아버지를 놀라게 하는 뱀을 미리 도망가게 하기 위해서다. 독이 없는 뱀들은 인기척만 있어도 미리 몸을 피하지만, 우리 섬에 많은 까치독사는 내가 짖거나 인상을 쓰고 쳐다봐야 슬금슬금 피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숲길을 다니며 내 깐에 잘 하는 일 중 하나다. 그날도 모래사장을 막 지나서 대나무 숲길로 들어서는데 피서 온 사람이 버린 구운 생선 대가리 하나가 길가에 떨어져 있었다. 기가 막힌 냄새가 나의 식욕을 자극했다. 나는 횡재했지만 이렇게 살이 많이 붙어있는 생선대가리를 버리다니 벌을 받아야 마땅할 일이다. 당장 먹고 싶은데 대나무 숲을 지나 간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제길헐! 이걸 어떻게 하나? 일단 대나무 숲에 들어가서 마른 대나무 잎을 들어내고 생선대가리를 거기 숨겨 놨다. 다시 대나무 잎을 발로 밟아 놨다. 그리고 뛰어가서 할아버지를 앞장서 매실 밭 까지 안내했다. 매실 밭일을 끝내고 두 시간 쯤 후에 돌아오다가 다시 그 대나무 밭에서 생선 대가리를 찾아 입에 물고 집에 와서 맛있게 잘 먹었다. 그 후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칭찬하는지 모른다. ‘글쎄 우리 오월이가...’ 그러나 사실을 얘기 하자면 전혀 칭찬 받을 일이 아니다. 물론 나중에 먹으려고 인적이 드믄 대나무 밭에 생선대가리를 숨겨 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계속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근처에서 생선 냄새가 나서 그 냄새를 쫒아 가다보니 바로 2시간 전에 숨겨 놓은 그 생선 대가리였을 뿐이다. 우리는 사람들만큼 키가 크지 않아서 멀리 볼 수 없고, 방향 감각도 탁월하지 않고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도 없다. 그러나 후각 기능만큼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니 생선 대가리를 찾아왔다는 것은 그렇게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다. 우리들한테는 주의력만 조금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어제 아침에 선창가 갯가 집에 사는 문 할머니가 씩씩거리면서 찾아왔다. 내가 다가가서 꼬리를 흔들며 인사하는데도 날 쳐다보지도 않는다. ‘장로님 계씨요.’ ‘집사님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들어가기는..., 이놈의 강아지가 또 내 신발을 물어가 뿌렀소.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으니 좀 찾아봐 줏시오’ 내 이름 오월이가 있는데도 이놈의 강아지라고 부르는 걸 보니 화가 단단히 났는가 보다. ‘지난번에도 서울 딸이 사다 준 쓰리파 끈을 끊어놔서 혼 내줬더니만 이제는 내 신는 신발까지 집어다 어디다 숨겨놨는가 보요. 우리 집에 못 들어오게 혼을 내줬더니만 내가 미워서 그랬는지 이제는 신을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다니게 생겼소. 개 좀 묶어 놓고 길르씨오’ 내 가슴이 철렁했다. 사흘 전에도 뒷집에 사는 윤 할머니가 내가 텃밭의 고구마 순을 짓이겨 놓는다고 묶어놓고 키우라고 할 때, 할아버지가 ‘오월이가 밭에 들어오면 혼을 내주세요. 정 말을 듣지 않으면 제가 고구마 밭에 못 들어가도록 그물을 쳐 드릴께요’ 그래서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 않은가? ‘오월이가 물어 간 게 확실한가요?’ ‘강아지가 아니면 누가 물어 갔겄소? ‘지난번 오월이가 물어뜯은 샌들은 지금 서울 가 있는 지권사보고 사오라고 했습니다. 오월이가 물어갔다면 그걸 먹지는 않았을 테니 제가 찾아볼께요. 못 찾으면 사다 드릴께 너무 화내지 마시구요. 오월이가 예쁘다고 데리고 가서 먹을 걸 자꾸 주시니까 혹시 또 뭘 얻어먹을까 해서 찾아 갔다가 아무것도 주지 않으니까 신발을 물고 온 지도 모르지요. 저희는 오월이 먹이로 사료만 주니까 고기 국물이나 생선 뼈다귀 주지 마시라고 그렇게 말씀 드렸는데도 예뻐서 그런다면서 제 말씀 안 들으셨지요? 그래서 또 뭐 얻어먹을게 있나 해서 집사님한테 가곤 하는 거예요. 신발이 어떻게 생겼지요?’ ‘늘 신고 다니는 파랑색이롸’ 날 묶어서 키우라는 문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 였다. 이번이 두 번째가 아닌가? 목을 매서 묶어 키우며, 반경 2m 원 안에서만 살게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잔혹한 일인지 정말 몰라서 하는 얘긴가? 남의 일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이웃 할머니들의 얼굴을 다시는 쳐다 보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 할아버지는 나를 묶어서 키울 생각이 전혀 없는가 보다. 그러니까 날 묶어 키우라는 얘기에 대답도 하지 않는 것 아닌가? 할아버지가 신발을 찾아보자고 나서는 걸 뒤따르면서 진심으로 할아버지께 감사했다. 할아버지가 날 처다 봤는지 못 봤는지 모르지만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할아버지께 꼬리를 빙글빙글 돌려 최상의 방법으로 나의 충심의 감사를 표시했다. 우리 종족은 꼬리를 좌우로 흔들므로 긍정과 순종의 표시, 유쾌한 기분, 감사, 호의, 흥미를 표시 하지만 빙글빙글 돌리는 것은 최상의 감사표시이며 충성의 맹세나 다름없는 인사 방법이다. 문 할머니의 신발 한 짝은 할아버지가 쓰레기통에서 찾아 제자리에 갖다 놨다. 한 시간 쯤 후에 문 할머니가 다시 찾아왔다. ‘장로님, 이것 좀 잡숫시오. 아그들이 여름에 해 온 떡 잠 쪘어롸’ 할아버지는 지금 연재 원고를 쓰는 시간인데 이럴 땐 훼방을 하면 안 되는데…. 맘씨 좋은 할아버지는 그래도 웃는 얼굴로 대답한다. ‘네, 그럽시다.’ ‘근디, 신발은 어디서 찾으셨소?’ ‘부엌 문 앞에 빗자루 뒤에 있습디다.’ 할아버지가 거짓말 하는 걸 처음 들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오월이가 집어간지 알고 사방을 찾아 헤맸소. 지권사한테 전화해서 내 쓰리파 사오지 말라고 해 줏시오’ 아침에 강아지 묶어서 키우라고 했던 것이 미안했던가보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문 할머니의 신발은 한 짝은 내가 물어 쓰레기통에 갖다 놓은 것 같다. 문 할머니가 돌아간 후에도 할아버지는 날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를 100% 오월이로 인정해 주고 가족으로 사랑해 주는 할아버지 때문에 나는 자유스럽고 행복하다. 나는 특별한 축복을 받은 강아지다. 이렇게 사는 것, 그것이 진짜 사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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