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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목사/ 인천 만수남부교회
[시론] 현수막, 이제는 없어져야!

▲길거리 현수막 거치대에 내걸린 현수막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까지는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움직이는 홍보물과 같았다. 그 시절엔 국민을 계몽하고, 계도하기 위한 국가적 시책이나 홍보내용을 리본에 새겨 왼쪽 가슴에 달고 다니게 했다. △△날도 많았고, ○○절도 많았다. 게다가 △△운동은 왜 그렇게 많았는지. 하기야 ‘전국 쥐잡기 운동’을 계도하기 위해서 “○월 ○일은 쥐 잡는 날”이라는 리본을 달아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뿐이던가, “전국 불조심 강조기간”과 같이 △△기간은 왜 그리도 많았던가.

돌이켜보면 그만큼 국민의식이 낮았다는 이야기 일 것이고, 국민을 계도할 수 있는 매체나 방법이 턱없이 부족했던 당시로서는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에 전국의 학생들을 움직이는 홍보물로 만들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1980년대에 들어와서 학생들을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없어졌다. 반면에 방송과 신문, 그리고 전단지들이 주로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와 함께 현수막이 길목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주로 관공서에서 행사와 계도하고자 하는 내용을 알리기 위해서 벽면에 걸거나 거리에 내걸었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소정의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즐겨 사용했다.

그랬던 것이 상업적 목적과 개인적인 필요와 기업들이 홍보를 위해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거리는 온통 현수막이 장악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현수막을 단속하는 규정이 만들어졌고, 공식적으로 현수막을 걸 수 있는 장소와 기둥을 마련하기 까지 했다. 그러나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할 만큼 현수막을 걸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급기야는 현수막이 도로변이나 고가도로 밑, 혹은 도로주변의 야산이나 들판까지 점령하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현수막을 통해서 전해지는 광고문구들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들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폰팅이나 국제결혼, 혹은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채무를 해결해주겠다는 광고들이다. OECD회원국이라는 나라의 거리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광고물의 내용이라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지나는 모든 사람의 눈에 가장 잘 띌 수 있는 곳, 그러나 쉽게 철거할 수 없는 곳에 설치한다. 그러니 철거되기 전까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모든 시민들에게 노출된다.

시 당국도 현수막 철거를 위해서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광고주들의 필요가 있는 한 철거반원들의 역할은 광고를 대행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매일 아침 새롭게 접하게 되는 현수막은 지난 밤 새로 설치된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현수막이란 다수의 사람들이 의견을 표현할 때, 즉 데모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었다. 현수막의 기원을 단정해서 말할 수 없지만, 주로 그러한 용도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딱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때 현수막을 이용하는 것은 효과적일 수 있고, 경제적인 면에서도 유리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말로 의사전달이 안 되거나 뭔가 저항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개인의 주장이나 장사를 위해서, 혹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까지 다양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보는 사람들의 기분이나 사회적 정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게다가 사회적, 윤리적인 문제까지 담겨있는 내용들을 버젓이 걸어놓는다. 눈살을 찌푸리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동반될 수 있는 것들까지 걸려있다.

이것은 환경적, 정신적, 사회적인 요소를 포함해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 그것도 OECD회원국 어느 나라에서 이렇게 현수막을 내거는 나라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툭하면 OECD회원국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말하기 좋아하는 우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도 그렇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현수막을 걷어내야 한다. 광고의 방법이 최 후진국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의식수준을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그것이 우리의 문화이며, 정서라고 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변한다면, 서로의 생각들을 충분히 나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상황을 인정한다면, 현수막은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할 우리 사회의 후진적인 모습이다. 더 이상 현수막을 통한 의사전달 방법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길거리나 건물벽에 걸려있는 현수막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조그마한 행사만 하더라도 현수막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행사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만에 하나 그렇다 할지라도, 이제는 바꿔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언제까지 선동적이고, 이벤트 분위기를 만들어서 목적을 달성하려고 해야 하겠는가. 이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국민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교회도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도시나 시골이나 할 것 없이 현수막 공해가 지배하고 있는 것은 환경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안정적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가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인 대학의 캠퍼스도 예외가 아니다. 캠퍼스 전체를 현수막으로 도배를 했다고 할 만큼 많이 걸려있다. 의사전달의 방법이나 그 능력을 가장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그들의 사회에서조차 이러한 실정이니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래야 하겠는가.

이젠 이 나라에서 현수막 공해는 걷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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