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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암교회에서의 12년 목회를 통해 농촌교회의 비전을 발견했다는 오용균 목사©뉴스미션 |
현재 우리나라의 미자립교회는 전체 교회의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농어촌교회의 경우 약 90% 정도가 영세 또는 미자립교회로, 외부의 지원 없이는 자립의 꿈을 이루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래서 농어촌 미자립교회의 목회자들 중에는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활 전선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러한 가운데 성도들과 삶의 체험을 공유하며 자립의 길을 찾아 새로운 영농목회의 대안을 제시한 이가 있어 관심을 끈다. 경북 의성군에 위치한 도암교회의 오용균 목사는 도저히 목회자를 모실 수 없는 농어촌 미자립교회를 스스로 찾아가, 부임 3년 만에 교회를 자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젊은 세대의 이농 현상으로 교회 성도는 감소하고 성도들의 연령대는 높아지고 있는 게 농촌목회의 현실이다. 하지만 농촌목회자인 오 목사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야곱의 서원에 은혜 받아 농어촌 미자립교회 목회 서원
오용균 목사가 농어촌 미자립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게 된 건 하나님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던 중 창세기 28장에 야곱이 서원하는 부분을 읽다가 큰 은혜를 받고, ‘언젠가는 목회자를 못 모시는 농어촌교회에 가서 봉사하겠노라’ 하나님께 서원을 한 것이다.
7년간의 신학 공부를 마치고 1995년 10월 10일 목사 안수를 받던 날, 오 목사는 기독신문사로 달려가 농촌교회 사역지를 찾는 광고를 냈다. 광고를 보고 여러 교회에서 연락이 왔지만, 성도가 10명 미만인 교회를 찾다가 도암교회를 알게 돼, 1996년 1월 29일 그는 도암교회에 부임했다.
그는 “처음 부임했을 때 교회 성도는 7명이 전부였다”며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는 없었고, 성미를 내는 성도는 2명뿐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예상은 했지만 마을 주민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며 전도 일화를 하나 들려주었다.
교회에 오겠다고 약속해 놓고 농사일 핑계를 대며 이리저리 피하는 주민이 있었다. 오 목사는 어느 주일 아침 다시 그의 집을 찾았으나, 그는 산 너머 논에 가고 없었다. 오 목사는 교회에 연락해 “기다리라”고 해 놓고, 그가 있는 논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구두를 벗고 양복바지를 걷어 올려 삽을 들고 논으로 들어갔다. 이를 지켜 본 주민은 결국 “목사님, 갑시다” 하며 교회로 향했다. 그 주민이 바로 도암교회의 김만조 장로라고 한다.
그는 “그렇게 해서 목회 첫 해에 11명의 성도가 주님을 영접했다”며 “한 생명 한 생명이 주님께로 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실감한다”고 고백했다.
교회 자립의 길 찾다가 ‘영농부’ 조직
부임 첫 해 오 목사는 재정적으로 교회가 자립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교회에 ‘영농부’를 조직하기로 했다. 영농부를 조직한 후 그가 처음 한 일은 콤바인을 구입한 것이다. 그는 “그동안 마을에 콤바인이 없어 주민들이 가을에 타작할 때 어려움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도 농기계를 다룰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그해 3월 경북도민연수원에서 농기계를 다루는 3주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연수원 관계자가 “목사가 이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의아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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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용균 목사는 농촌 미자립교회인 도암교회에 자원 부임해 3년 만에 교회를 자립시켰다©뉴스미션 |
그들이 먼저 오 목사에게 다가와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하고 부탁한다는 것이다.
영농부가 조직된 이후 도암교회는 12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성미가 부족해 벼농사(현재 1800평)부터 시작했다”며 “지금은 무씨농사(1600평), 고추농사(700평)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농사일 하다보면 너무 바빠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영농부에서 수확한 쌀과 고추는 모두 직거래한다”며 “서울 사랑의교회 복지관은 11년 동안 우리 교회 영농부에서 가공한 고춧가루를 직거래로 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영농부와 직거래하고 있는 교회만 10여 곳이 넘는다”고 덧붙였다.
2002년도에는 영농부 재정으로 사택을 헐고 1층을 식당과 휴게실로, 2층을 사택으로 신축했다. 교회 장의자, 에어컨, 온풍기, 목회자 차까지도 구입했다. 성도들의 아침식사를 위해서다.
오 목사는 “새벽예배를 마치면 먼저 기도가 끝난 성도가 교회에서 아침 준비를 한다”며 “새벽기도회에 오지 않은 분들까지 불러서 함께 아침을 먹고 일터로 나가기 때문에 식사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사택 공사를 다시 했다”고 털어놨다. 일반 교회 같으면 건축헌금을 따로 모아 했을 일을 도암교회는 영농부 재정으로 충당한 것이다.
도암에서 농촌교회의 비전 발견…성도들과 삶의 체험 공유하는 게 중요
오 목사가 부임한 지 올해로 12년, 이제는 도암교회의 모든 성도가 십일조를 드리며 세계 선교를 위해 후원한다. 1999년에는 46년 만에 ‘미자립교회’ 딱지를 떼고 자립에 성공했다.
그는 “처음 이곳에 와서 농사를 짓고, 주민들을 전도하는 모든 일들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모든 일상이 편하고 즐겁다”고 고백했다.
도암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오 목사는 이른바 주말 부부로 13여 년을 살고 있다. 홀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도 ‘도암에서 시작한 목회를 도암에서 마치겠다’는 그의 뜻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다.
그는 “도암에서의 시간들을 통해 농촌교회에도 비전이 있음을 깨달았다”며 “성도들과 삶의 체험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영농부를 조직해 교회와 지역사회가 상생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낸 오용균 목사와 그를 섬겨 온 도암교회 성도들의 모습이 열악한 환경에 있는 수많은 농어촌 미자립교회들에 희망과 도전을 심어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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