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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송자 선교사의 <대통령의 눈물>에는 그녀가 브라질 판자촌에서 사역하면서 겪은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뉴스미션 |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아픔을 겪어가면서까지 품어야 하는 영혼들이 살고 있는 사역지이기도 하다.
최근 <대통령의 눈물>이라는 책을 펴낸 김송자 선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빈민선교의 꿈을 안고 브라질 상파울루의 최대 빈민 지역인 판자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온 김 선교사는 바로 그곳 판자촌 사람들 때문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다.
하지만 그런 아픔마저도 ‘몸과 마음이 굶주린 영혼들’을 향한 그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빈민선교 서원 후 판자촌 찾아다니며 복음 전해
1974년 20세의 나이에 브라질로 이주한 김송자 선교사는 결혼과 함께 곧바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남의 집에 취직해 미싱ㆍ자수 일을 해 가며 돈을 벌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그는 “브라질에 와서 한 목사님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긴 했다”며 “그렇게 15년 동안 교회를 오갔지만 예수님을 받아들이지는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참석하게 된 부흥집회를 통해 그의 삶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그날 집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왜 교회를 다니지?’ 하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며 “이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몇 주간 철야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주님을 영접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김 선교사가 주님을 영접하게 된 또 하나의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바로 남편의 병이 나은 것이다. 그의 남편은 오랫동안 위염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점차 출혈이 심해져 위를 도려내는 수술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런 남편이 주님을 영접하고 병이 깨끗이 나은 것이다.
그때부터 김 선교사 부부는 빈민선교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겠노라 서원하고 신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마쳤다. 그는 “주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기 위해 행려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나 판자촌 등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곳만을 찾아다니며 찬양 간증 집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눈물로 시작된 판자촌에서의 사역
그러나 빈민선교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찬양ㆍ간증과 더불어 행려자들을 대상으로 이발 봉사도 병행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이발할 장소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행려자들이나 판자촌 사람들의 지저분함과 악취를 기꺼이 견뎌가면서까지 장소를 제공해 주는 사람을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였다.
고민하던 그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가장 더럽고 오염물이 넘쳐나는 강변 옆 판자촌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 우두머리인 일명 ‘대통령’을 만나 사정을 이야기했다. 대통령은 선뜻 장소를 제공해 줬고, 수행원들을 불러 ‘일하는 데 아무 불편이 없도록 최대한 협력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김 선교사는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차에 타기 전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그 대통령의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게 아닌가. 그가 영문을 묻자 대통령은 “누가 우리를 사람으로 보았소? 하지만 당신은 분명 신이 보낸 사람일 것이오!”라고 답했다. 그 대통령은 김 선교사가 판자촌에서 사역을 하는 동안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김 선교사의 한결같은 섬김과 헌신에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 맞는 것 같다”며 예수님을 영접했다.
“판자촌 사람들에 남편 잃었지만 이곳이 내 일터라는 확신에 다시 돌아와”
김 선교사는 바로 이곳 판자촌 사람들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그의 남편이 판자촌 사람들이 저지른 강도 납치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사건이었다”며 “처음에는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곳으로 오게 하신 주님이 왜 내게 이런 아픔과 고통을 주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한동안 방황했다”며 “단 1분만이라도 남편을 돌려달라고 울면서 기도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던 중에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들은 기억하지 않고 왜 1분의 시간에 매달리며 내게 탄식하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속에 전해졌다. 그리고 남편과 사역하면서 기쁘고 감사했던 순간들이 스쳐가면서 하나님을 향해 탄식하고 원망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어느 날은 아들이 곁에 와서는 “아버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 모든 걸 하나님께 감사하자”며 오히려 그를 달래주기도 했다.
결국 김 선교사는 판자촌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이곳이 바로 내가 일할 곳이라는 확신을 뿌리칠 수 없었다”며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따르니 판자촌 사람들도 모두 용서가 되더라”고 고백했다.
그는 “판자촌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의 신앙이 더욱 단단하게 다져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김 선교사는 판자촌 사역 외에도 기독실업인협회 강사를 비롯해 컨설팅 회사 경영 등 하는 일이 많다. 그는 “‘바닥’에 있는 사람들만 만나게 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위’에 있는 사람들도 만나게 하신다”며 “상류층 사람들과의 교제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더 효과적으로 돕게 하시려는 뜻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 어딘가에는 우리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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