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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직한 그리스도인 정직한 사회
![]() 나랏돈은 눈이 먼 돈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국고(國庫)가 의식 없는 공무원들에 의해서 구멍이 뚫렸다는 소식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 ‘쌀 직불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정당한 자격이 없거나 편법으로 받은 사람들이 문제가 된다. 정작 받아야 할 사람들은 받지 못하고, 전혀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중간에서 챙겼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그 근본에는 국고를 맡아서 집행하는 자들이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직불금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문제의 요소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발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나랏돈을 관리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랏돈은 자기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그 돈을 집행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공무원이라면, 고양이 앞에 생선을 맡긴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돈을 자기 주머니에 넣지 못하는 사람이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라면 어찌하겠는가. 어떤 제도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여러 가지 야기 될 수 있는 상황들을 점검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며,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공무원의 책임인 것이다. 나랏돈인 만큼 사후관리도 분명하고 철저해야 할 것이지만, 성과만을 나타내려고 하는 정략적 정책을 급하게 시행하는 과정에서 정작 살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것이 문제를 낳은 것이다. 심각한 것은 쌀 직불금을 불법, 혹은 편법으로 수령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 경작자들이 받아야 할 직불금을 가로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는 고위 공직자나 사회 지도층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다. 그것이 몇 명이 아니고, 몇 백, 몇 천 명이 아니라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물론 아직 확인된 것이 없기에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도덕불감증에 걸려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 뉴스에는 그 명단을 복원한다는 데, 그마저 두려움이 앞선다. 만일 정말 그 수가 그렇게 만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 중에 그리스도인들이 없으라는 법이 없다. 기본적인 확률로 본다 하더라도 최소한 1/5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인 스스로가 사회에서 소금의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결코 완전할 수 없지만,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사회에서 특별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그리스도인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의 자정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가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쌀 직불금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보험수가를 조작하거나 허위로 진료기록을 만들어서 보험금을 가져가는 병원과 의원, 약국들이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비밀이다. 그것을 감독하기 위한 기관이 있어야 하는 이중 삼중의 국가적 낭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여전히 의료보험은 새나가고 있다고 하니 할 말이 없지 않은가. 이 역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의사나 병의원, 약국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1/5은 역시 그리스도인 일 것이라는 통계상의 수치를 전제로 생각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입장이 결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직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강력한 경찰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경찰국가라 할지라도 여전히 불법이 있고, 불의가 있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 얼마나 공정하고 강력하게 사회적 정의와 질서를 위해서 대처하느냐 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효과는 얻을 수 있지만, 범죄와 불의를 완전히 근절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정직한 사회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에게 정직한 인격의 형성과 정직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사명이 큰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역할을 요구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 자신이 그 역할을 감당하게 될 때 비로소 사회적 변화가 동반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사회적 공의와 정직한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식을 요구하는 것이며, 동시에 국민적 의식이 성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안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아의식이 희박한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라고 전제한다면,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정직하지 못한 분위기와 그러한 정서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아쉽지만,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구약의 소돔과 고모라성의 심판의 사건을 기억하게 된다. 의인 열 사람이 없음으로 인해서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교훈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것은 죄인이 많아서가 아니라 의인이 없어서라는 의미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 사회에서 의인 열 사람에 속한 입장이기 때문에 그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우리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막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자신에게 조차 정직하지 못하다면, 정직한 사회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정직을 구현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하고,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은 그리스도인과 기독교를 적대시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향한 그들의 기대감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의 의식이 성숙해지는 것은 결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통해서 나타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이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더욱 자신에게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직한 그리스도인이 없는 정직한 사회는 결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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