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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기자 atcenjin@newsmission.com
개신교의 주류 편입, ‘이승만 편애 덕’ vs ‘불가피한 정황’

해방 이후 개신교가 한국사회에 주류로 편입될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 정부가 친(親)기독교적 정책 등으로 개신교를 ‘특별대우’했기 때문이라는 주장과, 이승만 정부와 개신교 간의 유대관계는 당시 한국사회의 정황을 볼 때 불가피했다는 주장이 충돌했다.

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 한규무)가 지난 1일 오후 2시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개최한 ‘2008년 학술심포지엄’에서다.

▲1일 새문안교회에서의 기독교역사학회 학술 심포지엄 모습©뉴스미션

“이승만 정부의 정교유착, 개신교를 특권적 종교로 만들어”

이날 심포지엄에서 ‘대한민국 초대 정부의 기독교적 성격’이란 제목으로 발제한 강인철 교수(한신대)는 ‘이승만 정부에 대한 개신교의 일편단심’과 ‘이승만 정부의 친기독교적 색채’로 인해 한국의 개신교가 특권적인 종교가 됐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1945~1948년까지의 해방정국에서 교회는 이승만의 권력 장악 및 그를 중심으로 한 남한만의 대한민국 수립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개신교 교회의 압도적 다수는 △명백히 반탁 입장을 취했고, △김규식의 좌우합작운동을 반대했으며, △이승만과 한민당의 단정 노선을 확고하게 지지함으로써 일찌감치 이승만 정부 수립을 도왔다는 것이다. 또한 △개신교 지도자들은 1948년 5ㆍ10 선거 당시 ‘기독교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 거의 무조건적으로 이승만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만의 개신교 인맥들을 정치권력의 핵심부에 포진시킴으로써, 정부 내 개신교의 독주 체제가 형성되도록 했다”고 밝혔다.

단적인 예로 △초대 각료 21명 중 9명이 개신교 신자일 정도로 개신교의 비중이 높았으며, △1948년 9월 유엔총회에 파송된 대표단의 경우, 가톨릭 신자인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신교인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승만 대통령이 권력 기반을 구축하고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개신교 인맥에 의존한 결과, 개신교가 정부 내에서 특권적 종교로 도약하게 됐다는 게 강 교수의 견해다.

“개신교의 한국사회 주류편입, 당시 한국사회 정황에선 불가피”

이에 박명수 교수(서울신대)는 이승만 정부와 기독교가 유대관계를 맺게 된 것과 관련 당시 한국 사회에 대한 거시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중요한 과제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중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이승만 대통령과 기독교는 공산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남한이 자유민주주의를 택할 수 있도록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해방 이후 정부 고위관료들 그리고 정치가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미국 유학, 선교사와의 만남, 미션스쿨의 교육 등을 통해서 해방 직후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개신교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된 것은 단지 이승만 정부와의 유착관계 때문이 아니다”라며 “이는 개신교가 새로 형성되는 대한민국의 이념을 가장 잘 이해하고, 또 그것을 가장 잘 수호할 역량이 있는 종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근거로 그는 개신교가 △한국의 종교 가운데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이것을 수호하기 위해 가장 열심히 공산주의와 싸웠고, △전후 복구 작업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국제관계를 통해 대한민국을 자유세계의 일원으로 공고하게 만들었다는 점 등을 꼽았다.

“이승만 정권, 다양한 정책 통해 개신교에 특혜” vs “과연 특혜일까”

계속된 발제에서 강 교수는 기독교를 국가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신념이 정부 정책을 통해 다양하게 표출됐다며, 그 예로 4가지 정책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국기에 대한 경례 방식을 종전의 배례(拜禮) 혹은 최경례(最敬禮) 방식에서 주목례의 방식으로 바꾼 점, △군종제도를 도입한 점, △국가의례를 기독교식으로 제정한 점, △형목제도를 도입한 점 등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이것이 과연 기독교에만 준 특혜인지에 대해서는 면밀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며 반박했다.

그에 따르면, 해방 이후 국기에 대한 배례는 신사참배와 형식이 유사해 개신교가 이를 반대했고, 이를 이승만 정부가 수용함으로써 주목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군종제도의 경우, 불교에도 똑같은 기회가 부여됐지만 합당한 인사가 없어 성사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 의례는 국가가 특정한 종교의식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고인의 종교와 관습을 존중해 결정한 것으로 봐야 하며, 형목제도에 대해서는 개신교에만 제공된 것인지를 좀더 연구해 봐야 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박 교수는 “한국 개신교는 서구 유럽이나 근대 이전의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정교유착은 하지 않았으며, 그런 정도의 혜택을 받은 적도 없다”며 “한국 개신교의 복음주의적 신앙은 국가의 강제적인 힘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신앙적인 결단에 의해서 이뤄진다”고 밝혔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강 교수 외에도 안종철 교수(서울대)가 ‘미군정에 참여한 선교사들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라는 제목으로, 이덕주 교수(감신대)가 ‘이승만의 기독교 신앙과 건국론’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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