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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종교개혁 491주년, 개혁신앙으로 돌아가라
종교개혁 491주년 기념행사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기념행사를 통해서 돌이켜보고자 하는 것은 종교개혁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즉 종교개혁을 해야만 했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기독교회의 참된 모습을 확립한 데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개혁이라는 말은 혁명(revolution)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혁이란 말은 오히려 회복(restoration)이라는 의미에 가까운 것으로 ‘돌이킨다’는, 즉 Re+form의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종교개혁이라는 말은 본래의 틀(form=성경)로 돌이킨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시간의 지남과 함께 본래의 모습, 가치, 기준, 본분, 나아가서 본래의 목적까지도 잃어버리거나,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인간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본래 가지고 있어야 하는 모습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신앙도 본래의 것과는 먼 모습으로 변하게 되고, 그럼에도 그것이 변질된 것인지도 모른 채 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념행사를 한다면, 그 과정을 통해서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과 성찰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와 신앙의 본질을 확인해야만 한다. 겉치레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행사라면 얼마나 거창하게 치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은 복음의 본질을 잊은 채 교회의 외적인 것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종교개혁 491주년을 기념하는 일을 통해서 평소에 잊고 있었던 교회적 본분과 복음의 본질을 재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아담 이래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를 힘써왔다는 것이고, 그와 함께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변질시켜온 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은 복음신앙을 부정했던 중세 로마교회의 신앙과 교회를 부정하고,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복음신앙과 참된 교회를 회복해야 함을 제창했다. 그로 인해서 복음을 통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복음을 말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중세교회에 있어서는 복음을 말한다는 것 때문에 이단으로 취급되었다. 실제로 중세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복음신앙을 말했지만, 그들은 대부분 이단으로 정죄되어서 화형에 처해졌다. 그러면 현재의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복음에 충실하고, 교회는 건강한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한국교회의 현재모습은 성경에도, 윤리적인 면에도 모두 충실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유형교회가 완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그럴 수 없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은 두 가지 모두에 대해서 충실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할 것이다. 복음은 말하고 있지만, 인본주의로 대치되는 상황이고, 교회의 거룩성은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바고 있으니 말이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충동적인 입장에서 개혁을 요구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세의 흐름이 성경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가는 현실에서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진리를 보았다. 그들은 모두가 현실에 매어있기를 자처하고 있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전적인 은혜를 깨달았다. 그리고 종교의식적 행위로 만족하고, 그것으로 지배하기를 기뻐하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과 종교의식에 포로된 채 절망하고 있는 이들에게 오직 믿음을 제시했다. 그러면 오늘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인가? 과연 종교개혁자들이 제시했던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고 하는 신학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나 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성장 지향적 가치’, ‘소비자(신자) 중심의 교회’가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으면서 종교개혁기에 이념들이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교회성장을 절대적 가치로 여길 정도로 ‘성장 지향적 가치’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모습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면, 그 가치에 의해서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절대적 가치가 오히려 상대화 되는 결과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교회는 신자들(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모습과 제도로 변해가고 있다. 때문에 교회는 교회의 정체성마저도 포기하지 않을까 걱정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교회는 신자들을 가르칠 수 있는 위치마저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실제로 교회는 신자들의 잘못된 신앙을 책망하거나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신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신학은 복음주의라는 이름을 표방하면서도 세속화 내지는 세속적 진보주의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하니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치시켜서 이해하는 것을 부정하고 있는 현실이다. ‘오직 성경’의 의미는 성경의 부분적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분이 아닌 전체 성경을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구원은 물론 믿음까지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확인하는 한 은혜 안에서 소망과 위로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부정되고 있으며, 믿음은 인간적 신념과 의지에 지배를 받는 인본주의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개혁신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굳이 종교개혁 491주년 기념이 아니라, 개혁은 주님이 그 나라를 완성하시기까지 계속되어야 할 우리의 과제인 것이니 말이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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