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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위의 크리스천, 나는 그를 버렸나?
[세계교회탐방기 28회 브라질]
- 난 히피가 아니다. (셋째 날)
23시 30분. 주유소 액세서리 판매점 주차장에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미겔은 돈 찾으러 은행으로 향했다. 약 15분 정도 떨어진 동네 중심가의 은행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필자를 기다리게 하는 게 미안한지 미리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동네 이발소 주인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만들어 줬다. 10분 후 약 3만원의 돈을 들고 돌아온 그의 표정에는 기쁨이 서려있었다. 모처럼 큰돈을 쥔 그가 한턱 쏘겠노라고 외치던 그의 말이(오늘 점심은 근사한 걸로 먹어요!) 쓸쓸하게 느껴진 건 왜일까?
오늘도 오.내(오르막,내리막)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여느 날과 같이 오늘도 다른 주유소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30분이 지나도 5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내가 잠깐 조는 동안 지나 친 걸까?’ ‘뭔가 좀 이상하다.’ ‘사고가 난 걸까?’ 10분 정도 되돌아갔다가 오늘 점심 먹기로 한 식당으로 일단 가보자는 생각에 다시 오르막을 향해 핸들을 돌렸다. 약속 장소에서도 30분이 지나도 그는 오지 않았다. 주유소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아직 지나가지는 않았다는데, 정말 사고가 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 무겁고 브레이크가 잘 잡히지 않던 자전거는 언제라도 사고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20분 정도 더 기다리다가 허기에 지쳐서 늦은 점심을 다 먹어갈 무렵 그가 나타났다. 땀으로 세수를 한 얼굴, 더러워진 두 손, 너무 반가워하는 두 눈동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말해주고 있었다. 내리막을 내려오던 도중에 체인이 엉켜서 뒷바퀴 살이 다 끊어질 뻔 했다고, 트럭을 얻어 타는데 1시간이 걸렸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 섞인 미소가 나온다. 돈이 생겨서 푸짐하게 점심을 먹을 거라던 그의 점심은 그날도 빵과 커피였다.
해가 저물도록 주유소가 나오지 않았다. 첫 번째 도착한 곳은 마땅히 잘 곳이 없는 곳이었고, 헉헉거리며 도착한 두 번째 주유소는 영업정지 한 곳이었다. 마침 건너편의 빵 집에서 1km만 더 가면 또 다른 주유소가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었기에 마지막 힘을 낼 수 있었다. 다행히 그 말은 사실이었다. 미겔은 의무처럼 주위를 둘러보다가 주유소 한켠의 정비소 직원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하더니 금새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고 필자를 소개했다. 그리고 정비소 옆의 액세서리 판매점 주차장 한쪽 자리에 잘 수 있도록 허락 받는 데까지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트럭기사에게 5천원을 후원 받았고, 식당에서 오늘의 저녁을 무료로 받아왔고, 아까 길을 물어본 빵집에서도 한 봉지의 빵을 후원 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하루를 살아냈다. 밤 10시가 다 돼 도착해서 저녁을 먹으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생각의 요지는 ‘그와의 이별’이다. 그도 우리가 다르다고 느꼈는지 아까 헤어지자는 말을 했었다. 무엇보다 그는 ‘이동’만 한다. 자전거는 그에게 단지 저렴한 대중교통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길 위에서 먹고, 자고, 생각하며 그냥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35년 동안 거리에서 바라본 그의 브라질은 도둑과 돈만 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교회에 가도 히피라고 무관심하던 사람들, 외모와 가진 것으로만 사람들을 평가하고 겉으로만 웃는, 소위 믿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들이 처음에는 가슴을 뜨겁게 했지만, 비판은 비난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고, 내가 만났던 만나게 될 브라질 친구들에 대한 편견이 생길까봐 그게 가장 두려웠다.
- 안녕 미겔. 난 그를 버렸나? (넷째 날) 07시 10분 기상. 새벽 4시 무렵에 도착한 트럭들 때문에 잠시 깼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조용하고 편안하게 잠을 자서 그런지 개운하다. 미겔은 눈을 뜨자마자 식빵을 높이 들고 “감사합니다. 하나님”이라고 외친다. 작은 것에 감사하면서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걸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인데 라는 생각이 들자, 그의 행동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진다. 오늘도 태양은 우리와 함께 했고 난 기다림과 함께 했다. 마지막으로 동행의 유무를 결정하기로 한 주유소에서 우린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쌍파울로까지 같이 갈건가요?” “음…아니요.” “당신은 너무 빨라요. 따라오느라 많이 힘들었어요. 저는 큰 도시에서는 장사도 해야 하거든요. 당신이 괜찮다면 같이 갈 수는 있지만….” 뭔가 마지막 점심을 맛있는 걸 사주고 싶었는데 작은 주유소 매점에는 마땅히 먹을만한 게 없었다. 조금 비싸 보이는 빵과 과일음료를 들고 돗자리를 펼치고 마지막 점심을 함께했다. 점심을 최대한 적게 먹고 남은 음식을 그에게 선물로 줬다. 그리고 뭔가 더 줄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그의 떨어진 셔츠를 보고 파라과이에서 선물 받았던 셔츠와 참치 캔을 선물하고 장신구도 몇 개 구입해서 가격을 두 배로 쳐주었다. 어제는 야광조끼와 담요를 주었다. 이 정도가 필자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그도 필자에게 장신구를 우정가격으로 팔았고 행운을 상징하는 작은 보석을 선물로 주면서 특별한 기도를 해주었다.
거리 위의 크리스천으로 살아야만 하는 살아내고 있는 그의 삶을 과연 그분이 기뻐할까? 평생 자전거만 타고 그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페달을 밟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힘든 일이지 않을까? 당신께서는 우리가 더 큰 기도를 하기를 원하시지 않을까? 세상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보다는 실제로 변화하고자 하는 그 일에 맞서기를 원하시지 않을까? 그런데… 난 그와 헤어진 게 정말 잘한 걸까? 그가 동행하기를 바랐는데 말이다. 난 나만의 편안함을 위해서 그를 버린 건 아닐까? 그에게 더 이상 신경 쓰기 싫어서 그냥 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나만의 합당한 이유들로 정말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이들이 우리의 삶에서 의도적으로 밀려난 경우가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에 목이 메여온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이방 사람들이나 추구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이런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오직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너희에게 더해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장 31절~33절) 2009년 2월 어느 날. 쌍파울로 가는 길에.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 박정규 올림.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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