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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의 사진을 찍다
[인터뷰] 휴머니티 할아버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81)씨. 평생 신산(辛酸)한 삶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온 우리시대의 거장 리얼리즘 사진 작가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존엄성과 그것에 기생하는 권력 의 부조리함을 알리기 위해 오늘도 80이 가까운 노구에 카메라 두대를 걸쳐 매고 자갈치 시장으로 향하는 그를 만나봤다.
1928년 황해도 연백 출생의 최민식 작가. 올해 그의 나이는 여든 하나이다. ‘사진작가 최민식’은 생소해도 누구나 한번쯤 그의 사진은 보았을 것이다. 미쓰비시 기능공이었던 그가 사진을 시작한 것은 1957년이었다. 그는 일본으로 가 미술전문학교에서 사진을 시작하게 된다. 사진의 대부분은 부산에서 찍은 것들이다. 그리고 그는 현재 부산 광안리에서 산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 사진에 넣을 아름다움은 거기에 없었다. 그의 눈에는 온통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뿐이었고 그 자신의 모습이었다. 필름에 넣기 시작했다. 그의 사진은 ‘종이거울’이라고 불린다. 종이거울의 시작 1957년에 밀항으로 일본에 갔다. 미술공부를 하고자 동경전문미술학교 디자인과를 다녔는데, 그때부터 사진을 시작했다. 하루는 일본 친구들과 헌책방을 돌아다니다가 ‘The Family of man’(인간의 가족)이라는 책을 사서 봤다. 그 헌 책이 나를 사진가가 되게 만들었다. 내 첫 카메라도 중고 카메라였다. 사진기술이 가장 많이 늘게 된 때는 62년에 가톨릭교회에서 돈을 받고 사진을 찍을 때이다. 가톨릭 자선회 신부가 ‘가난한 사람을 찍어오라’는 주문을 했다. 사진을 시작한지 10년째에 1967년 영국사진연감에 스타포토그래퍼(star photographer)로 실리게 되었다. 이듬해에는 1967년 독일사진연감(fotoalmanaen)에 하이라이트로 실렸다. 하이라이트는 책의 제목 앞에 실리게 되는 사진으로 의미가 매우 크다. 불쌍한 사람들의 사진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인색하다. 적선을 안 한다. 며칠 전 남포동 지하철역에서 구호단체가 계좌후원활동을 하고 있었다. 전시해 놓은 사진들을 보니 너무 가여워서 후원신청을 했다. 그때가 오후 3시쯤이었는데, 그날 내가 처음으로 후원을 하는 사람이었단다. 모금활동이 너무 안 되서 접고 내일 올라간다고 그들이 그러더라. 술 마실 돈은 다들 있으면서 5초에 한명씩 굶어 죽어가는 생명에는 관심이 없다. 아프리카에서 진흙 빵을 먹는다는 소리를 들어봤나. 흑백사진 기자-선생님 사진은 왜 모두 흑백인가요? 내가 칼라로 사진을 못 찍는다는 소문이 돌아서 이번 책에는 10페이지를 칼라사진으로 넣었다.(웃음) 구태여 칼라로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색깔로 예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니다. 사진에 메시지만 담기면 되지 않나. 살가드, 쿠델카(편집자 주-세계적인 다큐사진 작가)도 칼라로 사진을 찍진 않는다. 또 흑백사진이 경제적이기도 하다. 칼라사진의 1/4정도의 가격이다. 그런데 인도 같은 나라에 가면 칼라로도 찍는다. 그곳의 모습은 색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류를 위한 사진을 찍고 싶었다 한번은 내 책을 몇 권 들고 서울에 있는 유니세프에 찾아갔었다. 나는 성금 모으기나 기부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었는데 귀찮았는지 관심이 없었는지 대답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퍼뜩 드는 생각이 (열이 받아서) 지원을 안 해주면 일본유니세프에 가서 요청을 하겠다고까지 했다. 그런데도 뭐 별로 붙들지도 않고 허허.(웃음) 그래서 결국 못했다. 외국의 다큐사진작가들은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는다. 어디를 가든 재정적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독재정권의 간첩
시대가 바뀌니 김대중 대통령 문화훈장도 주고 얼마 전에 이명박 대통령도 문화훈장을 줬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가난한 사람사진 찍어서 나라망신 시킨다고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해외초청을 가려고 해도 여권을 안 만들어 주는 정도였다. 한번은 독일에서 초청을 받아 출국을 해야 됐다. 여권을 안 만들어 주니까 독일 외무부 차관이 직접 우리나라 장관에게 전화를 해서 겨우 여권을 만들어 간적도 있다. 여권 만들었다고 새벽에 전화가 왔더라. 71년도엔가. 미국에 갈일이 있었는데 또 여권을 안 만들어줘서 못 갔는데 거기 조총련계 사람들이 ‘최민식 만세’라는 구호를 외치고 그랬더란다. 안간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때는 간첩으로 사형이 될 수도 있었던 시대였다. 또 ‘인간(HUMAN)’ 1집을 동아일보사에서 출판했었다. 그 해 말에 울릉도에서 간첩이 잡혔는데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간첩의 소지품에서 ‘인간 1집’이 나온 것이다. 정말 철렁했다. 간첩신고를 한 100번은 당한 것 같다. 거지한테 간첩신고 당한적도 있다. 동해안, 서해안만 가도 신고를 당하곤 했다. 예전에는 간첩신고하면 포상금이 3000만원이었으니까. 밑져야 본전이니 일단 한번 신고를 다들 하는 거다.(웃음) 원로 사진작가의 한탄 현 정부로 바뀌고 문화지원정책이 바뀌었다. 문화에 대한 지원이 점점 줄고 있다. 우리나라 예술계 원로들에게 지원을 해주는데 고작 73명이었다. 거기서 사진을 하는 사람은 나 뿐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인원을 더 줄인 다는 게 아닌가! 그것도 30명이나 줄인 43명으로 말이다. 그 소식을 듣고 나니 거기서 빠지게 될까봐 밤에 잠이 안 오더라. 다행히도 그 43명중에 내가 들어가긴 했지만 너무 안타깝다. 원로예술가들이 돈이 많은 줄 알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나만 봐도 그렇지 않나. 대학생들에게 일침 집 앞이 대학가인데, 참 답답하다. 대학생이 꼭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대학생이 가져야 할 정서와 인격이 보이지 않는다. 대학에는 학문이 없어지고 점수 따는 일만 남았다. 예대의 문제도 심각하다. 졸업을 하고 갈 곳이 없으니 미대생이 공무원준비를 하는 것 아닌가. 강사자리도 없다. 한사람이 죽어야 들어간다.(웃음) 책을 읽지 않으니 인성교육이 되지 않은 것 같다. 독서는 혼자서 공부하는 행위다. 술 마시고 놀 시간에 책을 한권 더 읽어야 되지 않겠느냐. 학교 앞에는 서점이 없고 근처 서점은 2층에 위치하고 있다. 서점은 원래 1층에 있어야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들리는 건데…. 책을 읽지 않으니 자연히 글도 못쓰게 된다. 대학생들 독서 문제는 크다. 일단 나라나 대학에서 도서예산편성을 안하는 것도 문제이다. 좋은 책을 사다가 도서관에 넣기보다 취업관련 책만 사다 채우고 있다. 대학생들이 도서관에서 학문을 연구하지 않고 취업준비만 하고 있다. 미대생이 자기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정도이다. 부산일보 사장을 잘 아는데, 사장실에서 교수 여럿이 독서를 통한 시험출제에 대한 회의 중이었다. 문화면에서 독서에 관한 지면을 할애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 나는 서점에 매우 자주 간다. 책을 사러 가는 것이 아니더라도 습관처럼 무슨 책이 나왔나 보러간다. 당장의 쾌락을 위한 것들은 결국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여든의 사진작가 국가기록원에서 국가기록 데이터베이스 구축사업을 하는데 민간자료 소장은 내가 처음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모든 사업이 국가기록원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이나 자료는 모두 성남에 있는 국가기록원 최민식 사진방으로 가게 된다. 한번 가봤는데 지하 4층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고 왔다. 어찌나 시설이 좋고 보관이 잘되어 있는지, 실록이 마치 최근에 나온 듯 깔끔하게 보존돼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건강을 주셨다. 나는 눈이 참 좋다. 눈이 안보이면 사람을 발견 못하고 그들의 표정을 볼 수가 없다. 가끔은 내 스스로도 이상하다. 지금까지 어떻게 이걸 해왔나 모르겠다.
기자: "요즘도 매일매일 사진 찍으러 가시나요?" "내가 놀 시간이 어디 있어, 나이가 여든이 넘었는데."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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