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종편집 :
|
|
|
[시론] 칼빈 탄생 500주년에 즈음하여
한국교회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도 장로주의를 채택한 교회가 많고 신앙적인 면에서도 개혁파의 입장이 우세하기 때문에 칼빈 탄생 500주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장로교회는 칼빈 탄생 500주년을 어떻게 맞으려고 하는 것인지 자문하게 된다. 이벤트성 행사들이 많이 진행되는 것 같은데, 정작 칼빈의 신학적 입장을 통해서 한국교회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제시하는 일은 소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칼빈의 신학적 입장의 사람들은 칼빈이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제시하고 있는 신학적 가르침이 성경적이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신학적 깨우침을 살펴서 한국교회의 바르게 세우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칼빈을 높이는 행사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정작 칼빈 자신은 무덤을 만드는 것은 물론 비석조차 세우는 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더 이상 남기지 않기를 원했다. 그는 분명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위대한 한 시대의 지도자였음에도 자신은 “광야의 소리”일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시대에 필요한 일꾼으로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로 만족하기를 원했다. 더 이상 자신을 기념하거나 자신의 존재를 추앙하는 일은 하지 않도록 했다. 그런데 지금 그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은 인간 칼빈을 추앙만 하고 있는 것 아닌지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사회에서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를 돌아볼 수 있고, 이 시대의 지도자로서 그를 연구하여 귀감을 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를 높이는 일은 결코 그가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엄히 격노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꼭 그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려고 한다면 그를 높이는 일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을 높이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데 그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뒷전이고 그를 높이는 일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크다. 전체 한국교회 가운데 장로교파에 속한 교회가 어림잡아 60-70%에 해당한고 가정한다면, 지금까지 한국장로교회는 부끄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많은 장로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선교 120주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칼빈의 가르침을 전달받을 수 있는 준비에 너무나 소홀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현재의 한국장로교회 정도의 교세라면 칼빈의 가르침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칼빈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아니, 무관심일 수밖에 없는 정도의 의식수준인 것 같아서 아프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비롯해서 그의 주석과 많은 저서들을 우리글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되었나 하는 것이다. 이제는 양적으로 어느 정도 출판이 됐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 질에 있어서는 심각한 수준인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 기독교강요가 라틴어 원전에서 번역이 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는 정도니 말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글들을 원전에서 전역해 내는 것조차 아직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장로교회의 미래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현재 출판되어있는 것들은 대부분 영어나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번역한 2차 번역물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칼빈의 신학적 깨달음을 그의 원전에서 직접 번역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의식과 관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라도 번역된 글들을 읽지 않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는지. 정작 칼빈의 주석을 기독교 역사상 가장 탁월한 것이라고 말로는 하면서 과연 한국교회 안에서 칼빈의 주석을 얼마나 참고하고 있으며, 설교자들이 그의 주석을 읽고 있는지, 만일 이게 대한 질문을 한다면 대답 자체가 불가능할지 모른다. 16세기 당시 칼빈이 고민했던 것은 기독교가 성경으로부터 이탈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기독교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졌다. 그 결과 그는 성경에 계시된 기독교를 찾았고, 그것이 진리인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와 기독교의 각론과 관심사들을 해석해냈던 것이다. 그러한 것에 대한 그의 석명한 깨달음은 당시 유럽교회와 사회를 바꾸기에 충분했고, 그것은 현재도 다르지 않다고 할 만큼 탁월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정작 그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떤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칼빈을 기념하는 행사를 한다면 그의 가르침을 돌아보고, 한국교회가 과연 그의 깨달음에 얼마나 가까이 가려고 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개혁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그의 가르침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만일 그 가르침에는 관심이 없고, 그의 이름만 도용하려고 한다면 어떤 이벤트도 의미가 없는 일일 뿐이리라.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
| 자유게시판 /우수블로그추천 /포토에세이 /UCC마당 /독자여행기 /즐거운 요리 / 라이브폴 / 기사제보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