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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제신 장로 / 무등산공유화재단 이사
[그 섬에서] 누가 당신에게 “잘 살았소?”라 묻는다면
그 섬에서 - 100(마지막 회)

▲나는 얼마나 잘 살았는가? ©뉴스미션

지난주 손가락을 다쳤다. 웃자란 매화나무 가지를 낫으로 치다가 왼쪽 엄지손가락을 깊이 베었다. 피를 흘리며 이웃 마을 진료소를 찾아갔더니 상처가 커서 꿰매야 한다면서 병원이 있는 큰 섬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외기 배를 빌려 타고 병원으로 가서 여덟 바늘을 꿰매고 돌아왔다. 이틀 후 미국 사는 큰 누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꿈에 엄마가 보였는데 별일 없느냐는 것이었다. 손가락 다친 이야기를 했더니 그걸 조심하라고 엄마가 보였나보다고 하면서, 제신이는 나이가 들어도 왜 그렇게 조심스럽지 못하냐고 염려하는 누님의 말을 아내가 전해 준다.

이곳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쓰는 인사가 “잘 살았소?”이다. 일주일 만에 교회에서 만나면 거의 모든 성도들이 “잘 살았소?” 하고 인사를 한다. 며칠 만에 만나도 그렇게 인사를 하고 일 년 만에 만나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별일 없으셨나요? 와 같은 인사다. 어제 주일 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로님 잘 사셨소?” “아니오. 손가락 다쳤습니다.” “오메, 어찌다 그랬소?” 내가 마치 죽다 살아난 것 같은 다행함으로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나의 손가락 다친 것이 이웃과 성도들에게 큰 사건이며 별일이었고, 그래서 잘 살지 못한? 한 주간이었다.

잘 지내고 별일 없었다는 것은 어떻게 지냄을 말함인가? 별고(別故:특별한 사고)가 없었고, 가족 중 누가 다치거나 죽지 않았고, 이웃과 크게 싸우지 않았고, 거래를 하면서 큰 손해를 보지 않았으며, 지난번 만났을 때와 별 다름없음의 뜻으로 묻기도 하고 답도 하는 것이다. 천재지변이야 어쩔 수 없지만 별 다름없이 사는 것은 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님의 바람처럼 조금만 조심하고 조금만 양보하고 조금만 참으면서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며 다수의 편에 서기만 하면 된다. 별나게 살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다면 잘 산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공중 화장실에 가면 짧은 명귀들을 만나는 수가 있다. 그 중에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는다.> 그리고 곁에 설명까지 곁들여있다. <사람이 너무 결백하면 친구가 없다.>고. 그렇게 혼자 잘난 체, 혼자 옳은 체 하면서 살지만 않으면 별일 없이 살 수 있다. 적당히 흙탕물이 되어 고기들이 숨기 좋은 개울이 되어야 하고, 자기 자신이나 남의 사소한 실수나 잘못은 눈감아 주고 큰 손해가 없으면 알고도 속아주는 것, 그런 것들이,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 잘 사는 삶 아니겠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는 사람도 많다. 자신의 양심만 조금 가릴 수 있고 진리를 향한 시선을 살짝 피할 수만 있다면, 별고 없이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편하게 사는 법이다. 편한 것을 추구하고 편리한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별일 없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일 것이다. 별일 없는 삶,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믿는 사람들의 삶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 독불장군으로 보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 보는 것이 불쾌하고 거북해진다. 그들에게는 옳은 것이 의가 아니고 다수가 정의가 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서울대 교수 124명의 시국 선언도 서울대 전체 교수 1700명중에서 1/10도 못 되는 소수라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게 된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갔다. 손가락을 벤 별다른 사고 때문에 사람들이 날 보고 잘 살았냐?고 물으면 별고 없이 잘 살았다고 대답할 형편은 아니다. 전혀 예고 없는 사고로 손가락을 여덟 바늘 꿰맸으니 별고는 있었다. 그렇다고 잘 살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날 섬에 찾아온 손님과 함께 일하다가 일어난 사고다. 내가 다쳐서 다행이지 만일 손님이 다쳤으면 얼마나 난감 했겠는가? 손목으로 줄줄 흐르는 피를 보고도 냉정하게 진료소에 가서 소독과 응급조치를 하고, 또 배를 타고 병원까지 가서 치료하는 차분함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미국 누님이 보았다면 동생이 대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평소에 인사나 할 정도였던 이웃 섬 주민이 선외기를 대여해 준 것, 병원까지 날 수행해 준 것, 나에게 보여 준 이웃의 친절과 호의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 것도 득이라면 득이다.

사람들이 내게 그간 잘 사셨소? 하고 물을 때마다 그간 나는 정말 잘 살았는가? “네 정말 잘 살았습니다.”라고 대답할 만큼 살았는가? 반성하게 된다. 물론 상대방이 의례적으로 물었으니 나도 의례적인 인사치례로 얼굴 가득히 큰 웃음을 지으며 “네, 잘 살았습니다.”고 대답 할 수는 있다. 그게 사람들이 얘기하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대답하고 싶지 않다. 남이 의례적이고 진지하지 못하다고 나까지 그러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냥 웃기만 하던지 별일은 없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저에게 있어서 잘 사는 것은 그냥 별고 없이 사는 삶이 아니라, 별일과 별고가 있고 모험과 결단이 있고 시행착오와 성취가 있고,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지며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한 주간은 잘 살지 못했습니다.”

이제 <뉴스미션> 독자들과도 헤어질 때가 되었다. 사실대로 하자면 헤어질 때는 벌써 지났다. 욕심이 결단을 주저케 해서 오늘까지 연재를 끌어왔다. 4년 6개월 동안 ‘그 섬에서’의 대장정을 마친다. 그 동안의 세월만큼 이 작은 섬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죽은 사람도 있었고 떠난 사람도 있었고 곧 떠날 사람도 있다. 섬에서 만 7년을 지내면서 바다와 하늘과 바람과는 충분히 친밀해 졌지만,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우물 안 개구리가 된 노인들에게는 아직도 종종 생경함을 느낀다.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다. 연재 글에 실린 섬 이야기 덕분에 금년 봄엔 처음으로 섬에 살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섬 주민들로부터 섬 사정을 모르고 주민들을 무시했다고 왕따를 당하면서 무척 힘들었다. 어렵게 뭍에서 들여온 벌통은 다음해 겨울을 지나고 텅 비어버렸다. 14개월을 키우던 영리한 강아지 오월이가 선장 집 염소를 두 마리나 물어 죽여 결국 떠나보냈다. 묶어두는 날이 더 많은 선외기 에녹호는 자주 엔진 고장을 일으킨다. 목포서 기술자가 올 때마다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한다. “배를 잘 다룰지도 모름서로 비싼 쏘내기를 사갖고 애를 먹네 그려!”하며 혀를 차는 동네 사람들의 소리가 뒤통수에서 간지른다.

처음 들어오던 해 해변 가에 심었던 종려나무, 여름 밤 무등산처럼 섬 숲길을 환하게 해주기를 기대했던 노각나무, 나의 꿈 섬 죽도에 풀어준 호로새들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모두 전멸 당했다. 바다가 험한 날은 선외기를 선착장으로 끌어올리려고 만든 쇠바퀴를 단 수동 트레일러도 동네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고 녹이 슨 다음에 고철로 잘려 나갔다. 나의 어리석음과 욕심의 결과다.

처음 섬에 들어오면서 꾸었던 원시야생 자연생태보존지역으로 만들고 싶었던 무인도를 향한 나의 꿈은 그 동안의 시행착오를 수지채산으로 환산한다면 한마디로 파산이다. 그동안 투자한 나의 수고와 돈과 에너지를 생각하고, 내가 일찍 떠난 직장과 잃어버린 사회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뭍에서의 성취를 생각하면 나 자신 충분히 어리석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또 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계획을 세울 것이다.

물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계획할 때마다 또 다시 착오를 범할까봐 두렵다. 그러나 또 시행을 할 것이고 착오가 생길 것이다. 내 인생은 시행과 착오를 통해서 깊어지고 풍성해 졌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다는 변함없지만 날마다가 새롭고 어제와 다른 신선함으로 나를 깨우쳐 준다. 수평선에 벌어지는 석양의 황홀함, 아침 여명의 신비함이 날마다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다시 한 번 불끈 주먹을 쥐는 다짐과 결심이 착오의 두려움을 이겨내게 한다.

지난 4년 6개월 동안 연재 되었던 ‘그 섬에서’가 오늘 100회를 마지막으로 끝맺게 되었다. 그동안 부족한 사람의 글을 계속 실어준 <뉴스미션> 담당자에게 먼저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2주에 한 번씩 써야하는 짧은 글이었지만, 나 같은 아마추어에게는 쓰는 동안 계속 스트레스가 떠나지 않았다. 처음 <구굿닷컴>으로 시작할 때 당시 대표이던 조석인 목사님의 부탁을 받고 30회 정도 써보겠다고 스스로 약속을 했다. 그러다가 욕심이 생겼다. 욕심이란 다름이 아닌, 글을 쓰면서 잊었던 지적 탐구와 모색, 관찰과 작문의 훈련, 독서의 일상화, 그리고 그것들을 통한 내면의 성숙을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욕심이 50회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고 질질 끌어오다가 결국 오늘까지 왔다. ‘그 섬에서’라는 제목과 내 이름 때문에 웹사이트를 바꾸거나 인터넷을 꺼 버린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분들께는 이제 시원한 작별로 인사를 드린다. 격려를 보내주신 분들께는 아름다운 애정으로 인사를 보낸다. 고맙고 감사하다고, 그리고 바람결에라도 그 섬이 떠오르면 한번 찾아오시라고.

우리가 무엇이 되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그 때는 그동안 이룬 성공과 성취보다는 꿈을 이루면서 겪은 실수와 실패 그리고 시행착오를 유쾌하게 회상하며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모름지기 성공한 삶이라는 것은 실패를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는 삶 아니겠는가? 그것이 나에게는 잘 산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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