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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균 교수/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학과
세종시 논쟁, 백제시대 한성파 대 웅진파 재대결(?)

▲'세종시 원안' 백지화…정치권, 극한 대결 치닫나 오늘부터 대정부질문…여야 격렬한 격돌 예상 / 정운찬©뉴스미션

선사시대로부터 공주와 연기는 한반도 문화의 중심이었다. 수많은 유물 유적이 이를 증명한다. 고대국가체제가 성립된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였고 한 때 도읍이 들어서기도 하였다. 이 지역이 문화와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반도의 중심이라는 지정학적 원인도 있지만 풍수지리적 요소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애당초 풍수에 민감했던 이 땅의 사람들이 이곳을 행정의 중심으로 삼았던 이유는 산과 강물이 적절히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북으로는 차령산맥이 둘러쳐져 매서운 북서풍을 가로막아 주었고, 남으로는 대평원과 구릉 사이를 금강이 유유히 흐르면서 한여름 시원한 남동풍을 받기에 충분한 천혜의 배산임수(背山臨水)형 명당이란 것이다.

곰나루, 일명 웅진(雄津)이라 했던 이곳을 백제는 63년간(475∼538) 수도로 삼았다. 본래 백제의 수도는 한강유역 한성(漢城)이었지만, 고구려의 강력한 남진정책으로 수도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천연요새 웅진이 선택된 배경이다. 고구려 장수왕 때의 일이다.

백제는 계속된 고구려의 위협을 막기 위해 중국에 도움을 청했지만, 고구려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 백제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입장이었던 신라와 연합전선을 구축하며 나라를 세워 나갔다.

하지만 백제사회는 이도(移都)에 따른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웅진지역의 신흥 집권 세력과 기존 한성지역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던 이주(移住) 세력간의 갈등이 생긴 것이다. 백제의 중심이 한강에서 금강으로 옮겨가면서 발생한 정치세력간의 마찰이다.

금강지역의 신진세력 웅진파와 한강지역의 남래(南來)귀족 한성파가 갈등하면서 백제는 혼란에 빠졌다. 자연재해까지 겹친 백제는 결국 왕권강화와 백제중흥이란 명분을 내걸고 사비(泗沘), 오늘날 부여로 다시 천도를 감행하였다. 행정중심도시 공주가 다시 지방도시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공주는 충주, 청주, 홍주(홍성)와 더불어 목(牧)이 있던 충청권의 중심지였다. 충청권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공(公)자가 사용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충청도라 하지만 이전엔 충공도(忠公道, 1505), 청공도(淸公道, 1550), 공청도(公淸道, 1608), 공홍도(公洪道, 1628), 공충도(公忠道, 1825)라 하였는데, 이 때 사용된 ‘공’자가 모두 공주를 가리킨다.

근대이후 1896년부터 1932년까지 공주는 충청남도 도청소재지로써 지방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경부선 철도가 대전을 통과하고 호남선 기점이 대전이 되면서 공주는 또다시 쇠락의 길을 걸었고 급기야 도청까지도 대전으로 옮겨가는 수모를 겪었다.

그때도 공주의 민심은 들끓었다. 횃불시위는 물론 투석전까지 전개하면서 도청을 잡으려 하였지만, 떠나는 도청을 잡지는 못했다. 행정수도를 유치하려는 지금의 상황과는 상반된 입장에서의 데모였다.

세종시 논란이 뜨겁다. 원안대로냐 대폭수정이냐의 끝없는 논쟁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둘 다 일리 있어 보인다. 행정수도 이전문제이니 당사자 아닌 국민이 어디 있겠냐마는, 양자의 심한 갈등은 현 정권과 충청권의 대립으로 비춰지고 있다. 한편으론 현대판 한성(한강)파와 웅진(금강)파의 재대결 양상 같기도 하다.

행정수도 분리에 따른 행정 비효율을 염려하는 수도권중심의 한성파 주장과 국토균형발전을 외치는 웅진파 주장이 극과 극을 치닫는 형국이다. 양자의 결사적 투쟁과 고집이 국가장래를 위한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자신들의 이권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행정효율도 국토 균형 발전도 모두 이룰 수 있는 적절한 묘안은 없을까?

망둥이 뛰는데 꼴뚜기 뛰는 심정으로 한마디 말하고 싶다. 세종시는 지정학적 전통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고려한 신도시가 되어야 한다. 공주지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저버린 신도시 건설은 무의미하다. 단순히 자족기능만을 생각한다면 백년대계(百年大計)를 기약할 수 없다.

도시의 자족기능을 단지 삶의 수단과 방법에서 찾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이다. 먼 안목에서 도시의 자족기능을 생각한다면 지역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고려하며 그 특징을 살려야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수만년 수천년의 역사를 온존하고 있는 공주의 특징을 십분 활용한 신도시 건설을 제안한다. 동시에 수도권 도처에 흩어져 있는 역사, 문화, 교육, 관광과 관련된 행정기관만이라도 이전한다면 9부 2처 2청 이전에 따른 행정비효율이란 염려도 사라질 것이다. 역사, 문화, 교육 관련 부처들은 중앙, 특히 청와대와 국회의 간섭을 덜 받아가며 국가 백년대계를 계획하고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여건이 마련될 것이다.

거기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효행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명시한 ‘효문화진흥원’도 한국의 대표정신문화의 전당으로서 그곳에 세운다면 명실공히 한국의 역사, 문화, 교육의 중심도시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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