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 함춘호가 걸어온 30여 년 음악 인생, 최고의 자리를 예비한 이는 하나님 손길이었음을 겸허히 고백한다. 하나님을 떠났던 청춘의 시간, 교육자의 길을 거부했던 가슴앓이. 함춘호는 결국 하나님 계획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한다. 희끗희끗 눈비가 경이로운 설렘으로 덧칠하는 마지막 계절에 그를 만났다.

 

"멀리 떠났던 교회…CCM 음반 작업하며 하나님 다시 만났죠"

연주자로, 교수로, 나눔을 실천하는 함춘호는 기독교 메시지를 전하는 공연에 소명을 다한다. 그의 음악세계는 과시보다 절제로, 서정적이고 편안한 삶과 신앙을 그려낸다.

사춘기 때 교회에서 음악의 깊이를 배우게 되고, 상식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경험을 갖게 됐다. 하지만 연예인 교회로의 권유와 대중음악을 사탄음악으로 치부하는데 상처받고 오랫동안 교회를 멀리하기도 했다.

"교회를 참 멀리 떠나있었어요. 근데 하나님이 저를 끝없이 부르시더라고요. CCM 음반을 만드는 작업자로 계속 찾으시는 거예요. 저는 계속 거부했고요. 거절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제게 준 은사를 어떻게 쓰임 받을까 생각했어요. 시작은 찬양사역자들 음반에 편곡자로 참여하면서였어요.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는 계기가 됐죠. 만약 그때 그 일마저도 거부했다면 하나님께 크게 맞지 않았을까 싶어요."

함춘호는 1980년 그룹 '전인권과 함춘호'로 데뷔했으며, 곡마다 의미 부여로 감동을 공유하는 연주는 30여 년 음악인으로서 자부심을 세우기에 충분했다. 그는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교수로, 교육자의 길을 걸으니 인생을 보는 목적지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교회 안의 건강한 청소년들이 음악을 하고 싶은데 일반대 음악과를 지원하면 분명 신앙적 어려움을 겪게 돼요. 교회 기독교 문화권에서 자란 친구들에게 건강한 실용음악의 길을 터주기 위해 이 학교의 문을 열어둔 겁니다. 꿈을 잃지 않고 인생의 목표를 제대로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해요. 철부지 시절 나이트클럽에서의 활동은 영적으로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좋은 영으로 대중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많이 배출되도록 후학 가르치기에 매진하고 있어요."

 

문화 소외지역 찾아가 게릴라콘서트로 음악적 소통

함춘호는 예수 믿으란 말보다도 남들에게 스스로 모범이 되는 삶을 보임으로써 생활 속 전도를 실천하고 있다.

"송창식 선배와 가깝다 보니 둘이 나누는 얘기가 많잖아요. 어느 날 저더러 '넌 좋겠다. 교회 다니잖아' 그러시는 거예요. 정말 그것만큼 뿌듯한 것이 없더라고요. 결국 교회 다니는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에 저렇게 편안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는 거잖아요. 이런 느낌이 힘든 사람을 교회로 발길 돌리게 하는 이유일 거란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어요."

2007년 찬송가 연주곡을 담은 첫 솔로음반 '콰이어트 타임'은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철저한 준비로 찬송가 전집을 경음악으로 담고 싶은 포부와 꿈도 전했다.

"작은 버스에 음향장비를 싣고 저와 미래를 책임질 친구들과 함께 소외된 자를 위해 자유롭게 떠나는 겁니다. 현지에서 게릴라콘서트를 열어 문화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과 음악을 나누고 그들을 보면서 저도 행복하고 싶어요."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함춘호는 서울신대 학생들과 한빛성결교회, LA새생명비전교회 등 미국 교회를 순회하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음악적 영감을 받아 병신년을 뜨거운 연주로 달궈보리라는 결의에 찬 목소리가 기운차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의 두터운 보호 아래 만났던 음악은 이제 신앙과 버무려져 고요한 절정으로 익어간다. 예술가적 난해함을 정감 있는 웃음으로 감춰도 우리는 그가 대중음악사에 획을 그은 큰사람임을 눈치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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