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어둠을 앞세우고 기세등등한 퇴근길. 세월의 무게만큼 무거운 바늘은 어김없이 열둘의 역사를 그리며 쳇바퀴 돈다. 건너 저편은 잊겠노라 멈춰버린 청춘에 이모작하는 정선희 집사를 만나 반세월을 돌아봤다.
 

"명예와 부가 쏟아지니 마음이 굳어갔어요"

정선희의 꿈은 개그우먼이 아니었다. 관심분야였던 어학 계통에 종사하고 싶었던 것. 하지만 고등학교 때 청소년 오락 프로그램 '비바청춘'에 발탁되면서 방송계에 입문했고, 1992년 SBS 1기 공채로 개그우먼의 길을 걷게 됐다.

불교신자였던 어머니는 친구들의 끈질긴 중보기도로 하나님을 영접했다. 기적이었다. 당시 정선희는 개그우먼 3년 차였고, 재미는 있으나 결실 없는 현실에 심적 부담을 느꼈다.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회의와 불안감이 밀려왔죠. 프리랜서 개념이 확립되지 않던 시절이라 다른 방송국으로 옮겼다가 SBS의 오해를 사게 됐어요. 케이블TV를 전전하며 흔들렸죠. 뭔가에 의지하고 싶어 어머니를 따라 새벽예배에 참석했어요. 그때 제가 죄인임을 깨닫고 한없이 눈물을 쏟았어요. 하나님과의 교제는 그렇게 시작됐죠."

그러나 정선희는 신앙과 일상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고, 의무감으로 행했던 간증과 예배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겉돌았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난 시기는 불과 1년 전. 성경공부로 신앙의 참뜻을 알게 됐다고 술회한다.

"20여 년을 하나님 곁에 앉아있었는데 제가 몰랐던 거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명예와 부, 축복이 계속되니까 당연시되면서 마음이 굳어갔어요. 간증하면서도 하나님을 바르게 만나지 못한 것 같아요."

신앙이 성숙되고 변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선교나 십자가 사명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다. 오지로 보내거나 목회자의 길로 인도할까봐 더럭 겁도 났다.

"크리스천이기는 하지만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무서웠어요. '방송일 하는 것을 싫어하나?' 그런 생각으로 여쭤보면 이상하게도 다시 현장으로 되돌려 놓는 거예요. 얼마나 어리석고 단편적인 생각을 했는지. 하나님은 방송 현장에서 저를 깃발로 사용하길 원했죠. 즐겁게 하나님 은혜를 만끽하면 그것이 선교란 걸 늦게나마 알게 됐어요."
 

거짓 진실과 악성 댓글에 난도…분노 녹인 하나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결혼 10개월 만에 벌어진 남편의 죽음. 거짓 진실과 악성 댓글에 정선희는 난도 당했다. 암담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 안에서 사투했다. 주변을 배려한 선의의 거짓말이 위선으로 둔갑했고, 반복 보도는 진실이 됐다. 억울했다.

"5개월 연애하고 결혼했는데 갑자기 생긴 일에 얼떨떨했지요. 사실 결혼 당시 금전 문제에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믿었어요. 재환 씨도 노력 많이 했고 배우자에게 재정적으로 기대고 싶은 본능은 누구에게나 있듯 아낌없이 도왔어요. 그 가슴 아픈 결단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지금은 추억할 수 있어 감사해요."

정선희는 미움이 풀리지 않으면 자신의 삶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지나보니 예수와 함께였기에 버틸 수 있었고 비로소 원망에서 자유로워졌다. 슬픔과 분노는 아직 진행형이지만 노여움이 더 이상 기쁨을 방해할 수는 없다.

"간 사람도 미웠지만 남아서 저를 공격하는 사람도 미웠어요.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해하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매 순간 하나님이 말을 걸어줬어요. 포기하지 않게 잡아줬고 분노의 마음도 가라앉혀주었죠."

이제 안재환에 대한 기억은 앨범에 담긴 박제된 추억이다. 아직까지 정선희에게 새로운 사랑은 버겁기만 하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여전히 힘겹고 찔리면 가시처럼 아프지만 이젠 회복 속도가 제법 빨라졌다.

"새로운 사랑이 엄두가 안 나요. 누군가를 사랑해서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 제 짐까지 지워야 된다는 것이 싫어요. 시선과 관심이 부담스럽고 그게 설레는 마음을 차단해서 가슴이 안 뛰어요. 차라리 두려움에 심장이 뛰는데 그건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트라우마 같아요. 하나님께 맡기고 위탁하는 훈련을 하고 있어요."
 

"전도는 크리스천다운 삶을 살아내는 것"

연예인은 자존감이 박수소리에 비례한다. 그래서 정선희는 활동에 쉼표를 찍고 있을 때 하나님과의 교류가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뎠던 절친 엄정화, 이영자, 홍진경도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됐다.

전도의 기본은 크리스천다운 삶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 정선희의 전도 방식은 섬김이다. "누군가를 외롭게 하는 크리스천은 되기 싫어요. 예수가 미천한 말구유에 왔듯 자신을 자랑하기보다 낮아지고 섬기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래서 마음 밭을 가꿔달라고 기도해요."

2016년 새해 다짐은 수수하다. 하나님께 바짝 다가앉는 한 해가 되길 소원했다. TV보다 라디오 매체를 선호하는 그는 건강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낮 시간대 라디오 진행을 희망하고 있다. 현재 번역가로도 활동하지만, 청소년을 위한 언어사역에 동참하고픈 꿈도 전했다.

정선희에게 가해졌던 무수한 화살은 역설의 생명으로 거듭났고, 굳이 대속의 은혜를 논하지 않아도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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