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기 목사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우리의 생각을 밝히 아시고, 우리의 행위를 익히 아시고, 우리 입술의 말까지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신 분이다.<시139:1-4> 그리고 행위대로 심판하신다. <벧전1:17> 다윗이 은밀하게 악을 행하였으나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인가? 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모든 것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늘 함께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너무 너무 좋으신 하나님, 그러나 죄에 대하여서는 무섭게 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벌과 은총 사이에서 때로는 갈등하신다.
 
열왕기하 20장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고 하셨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것을 이방 나라에 갖다 바쳤고, 하나님의 성전 문과 기둥에 장식했던 금을 다 벗겨 바쳤으니 그것이 죽어 마땅한 죄였다. 그때 히스기야가 기도하는데 심히 통곡하며 기도한다. 왕의 체면도 버리고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회개하며 기도한다.
 
"여호와여, 죄만 기억하지 마옵소서.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성전 문과 기둥에 금 껍데기 벗긴 것만 기억하지 마옵소서. 이전에 전심으로 주를 섬긴 것도 기억해 주시옵소서. 이전에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한 것도 기억해 주시옵소서.” 우리도 지난날 선을 행한 것 기억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도하는 모습을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 38장 14절에 ‘제비같이 학같이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지저귀었다. 눈이 쇠하도록 하나님을 앙망했다.’고 표현했다. 히스기야는 죽음의 선고를 받고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돌아보며 기도했다. 통회의 눈물로 무릎을 꿇었다. 결국, 그 간절한 기도는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하나님께서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하시며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고 앗수르 손에서 구원하고 보호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히스기야에게 벌을 내리시려고 작정하셨다가 히스기야가 지난날 잘했던 것을 기억해달라고 기도하며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벌과 은총 사이에서 갈등하시다가 은총을 베푸신 것이다. 회개만이 살 길이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죄를 은폐하려고 하다가 살인죄까지 추가했다. 하나님이 벌하셨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치셨다. 병들어 죽어갈 때 다윗이 금식하며 회개하며 기도하자 벌과 은총 사이에서 갈등하시던 하나님이 벌로 아들은 죽게 하시고, 은총으로 솔로몬을 주셨다.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수없이 회개를 선포하고 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말3: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55:7>,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회개란 돌이키는 것이다. 본래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에겐 원래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리가 있다. 그 자리를 이탈하면 문제가 생긴다. 천사 루시퍼, 아담과 하와, 사울 왕이 자리를 이탈하여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그러나 반대로 아브라함이 순종의 자리에 있을 때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묻고 인도를 받으며 지시에 따라 순종의 자리에 있을 때 지켜주시고 승리하는 복을 받았다. 다니엘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의 자리 순종의 자리에 있을 때 사자 굴에서 건져 주시고 바벨론에서 높여 주시는 복을 받았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회한과 괴로움 속에서 다시 하나님께 돌아갔던 나오미처럼,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간 탕자처럼 돌아가야 한다. 회개는 구원의 관문이요 축복의 관문이다. 누구든지 인간적인 고집과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겸손히 돌아가면 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집을 나간 탕자는 비참했지만, 돌아온 탕자는 행복했다. 아버지께로 돌아오자마자 모든 것이 회복되고 해결되고 채워졌다.
 
하나님은 돌아오라고 우리를 애타게 부르신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고통도 아픔도 슬픔도 허락하시지만 정말로 주시려는 것은 축복이다. 징계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돌아가자. 은혜의 자리로, 기도의 자리로, 믿음의 자리로, 순종의 자리로, 말씀이 있는 떡집으로…그러면 벌과 은총 사이에서 갈등하시는 하나님이 용서해주시고, 고쳐주시고, 싸매어 주시고,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고, 은총의 바다에서 헤엄치며 살게 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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