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섰던 한국기독교장로회 증경총회장 박형규 목사가 소천했다. 독재정권에 맞서 6년간 ‘노상 예배’를 드리며 항거했던 박형규 목사의 소천 소식에 교계 인사는 물론 야권 정치인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거목 박형규 목사가 18일 오후 소천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예배는 오는 22일 오전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드려진다.(사진제공=연합뉴스)

‘길 위의 목회자’, ‘민주화의 산증인’ 박형규 목사
 
평생을 빈민선교와 민주화·빈민운동에 헌신했던 박형규 목사(향년 94세)가 18일 오후 5시 30분 소천했다.
 
박형규 목사는 과거 유신정권에 저항하며 60~70년대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1973년 당시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현수막과 전단지를 배포하려다 실패한 뒤 ‘내란예비음모죄’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후 1978년, 유신체제를 비판하고 새로운 헌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3·1 민주선언’을 발표하다 기소돼 또다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박 목사는 이러한 민주화운동으로 총 여섯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감금·살해 위협·테러·예배방해를 당했던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박 목사는 6년간 ‘노상예배’를 드리며 독재정권에 항거했다. 이 일로 박 목사는 ‘길 위의 목회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59년 서울 공덕교회 부목사로 목회자의 길을 시작한 박형규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남북평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손학규, 문재인 등 야권 정치인 조문 이어
 
박형규 목사의 소천 소식에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야권 정치인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결혼식 주례를 부탁할 만큼 박 목사님을 존경해왔고 박 목사님도 나에게 목회자의 길을 권하는 등 사랑을 베풀어주셨다”며 “박형규 목사님은 청년기 이후 내 삶을 결정해주신 나의 멘토”라고 회고했다.
 
손 전 고문은 박 목사의 소천 소식을 듣고 전남 강진에서 곧바로 올라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빈소 근처에 숙소를 잡고 장례 모든 일정에 동참할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19일 빈소를 찾아 “박 목사님은 재야 민주화운동의 가장 큰 어르신”이라며 “박형규 목사의 뜻에 따라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과거 박형규 목사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장으로 사역할 당시 인권위원으로 활동하며 인연을 맺었다.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김종인 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도 19일 빈소를 찾아 박 목사의 영정 앞에 헌화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고인은 목회자로도 존경받았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문제에 기여한 어른이었다”며 “목사님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었던 일들을 우리가 열심히 이루겠다는 각오의 말씀을 영정 앞에 드렸다”고 전했다.
 
박형규 목사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01호실에 마련됐으며 5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예배는 오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예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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