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교수
가족의 변화

지난번에 통계청이 발표한 2015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젊은 연령층은 결혼을 미루며 독립하여 혼자 사는 가구가 늘어나고, 노인들도 자녀와 동거하지 않고 혼자 사는 가구가 늘면서 2010년 1인 가구 비율은 23.9%로 30년 전인 1980년 4.8%보다 19.1%p가 증가하였다. 이러한 1인 가구의 증가로 가족 규모가 장기간 축소되면서 평균 가구원수는 1980년 4.5명에서 2010년에는 2.7명으로 감소하였다. 여기에다가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56.8%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되어 1인 가구의 증가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통계 결과가 보여주는 특징은 한 마디로 가족 형태의 변화이다. 노인 인구가 급격하게 늘었지만, 자식과 따로 사는 노인들이 많아지면서 노인 1인 가구가 늘고 있고, 결혼을 미루는 젊은이들이 1인 가구 증가에 가속력을 붙이고 있다. 여기에다가 이혼이 증가하고 이에 따른 재혼 가족도 증가하면서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보다 다양한 가족들이 출현하고 있다. 한부모 가족, 조손 가족, 기러기 가족, 무자녀 가족 등 이른바 ‘비정형’ 가족들의 증가로, 이것은 항상 한국의 가족을 생각할 때 떠오르던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는 ‘4인 가족’은 더 이상 한국 가족의 모습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미래 사회에서는 가족이 위기를 맞고 나아가 가족이 해체될 것을 우려한다. 그리고 결혼과 출산의 중요성의 강조를 통해 전통적인 가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재구조화되고 있으며 단지 가족이 다양화되고 있을 뿐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형태로 주조되어야 한다고 가정하는 것보다 가족 유형과 성생활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무엇이 정상 가족인가’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가족의 위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통 가족이 곧 정상 가족이라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반면, 가족의 재구조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와 양성 평등을 지향하는 근대 가족이 정상 가족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오늘의 가족이 전통적인 가족으로 복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가족의 이상적인 모형이 되기에는 과거의 가족에는 가부장적인 측면과 같이 너무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요소들이 많아서 실제로 가족 사이에 철천지원수처럼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사람들의 가치관과 정서가 크게 변하였는데 단순히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며, 결혼과 가족 형태를 변화시킨 사회 변화 자체를 되돌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가족을 기독 시민의 산실로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단순히 가족의 형태보다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 가는 데에서 우리 사회의 공공성에 기여할 수 있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나치게 성공과 출세를 지향하며 살고 있다. 교육을 하는 것도 대학에 가는 것도 성공하고 출세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사회의 공공선을 이루기 위해서보다는 개인의 영달이라는 사사로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중고등학교 교육은 입시 교육으로 전락했고, 대학 교육은 취업 교육에 다름 아니다. 기독교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도록” 간구한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작은 일에 힘쓰는 선한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개인으로서의 가족 성원보다는 집단으로서의 가족이 우선시되며, 그 가족의 영속성과 발전을 유지하기 위한 ‘집안’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족주의 성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기러기 가족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기러기 가족에서 교육 투자의 특징은 비용 측면에서도 거의 전 재산을 다 쏟아 붓는 과도한 투자임과 동시에 교육을 위해 전 가족의 생애를 다 바쳐 희생을 감수하는 것으로 자녀의 성공을 위해 가족을 수단시하는 도구적 가족주의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가족은 그 자체로서 중요한 것이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으며 특히 특정 가족 성원을 위해 다른 가족 성원이 희생을 하거나 권리를 침해당하는 것조차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혈연을 중심으로 하는 삶의 방식은 올바른 기독교인의 태도라고 볼 수 없으며 우리 사회에 바람직하게 기여하기도 어렵다. 지나친 가족 중심의 가치관은 개인들의 관심과 삶의 중요한 부분을 사사로운 영역에 집중시키고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곧 공공의 목표보다는 개인과 개인에게 울타리를 제공하는 가족의 이해관계에 치중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공공 영역의 확장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가족은 사사로운 이기주의자의 양산을 중단하고 공공의 삶에 책임 있게 참여하는 기독 시민을 길러내는 산실로 거듭날 수 있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을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어서는 안 된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성공의 사다리에 오르도록 부추길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키워야 한다.

신앙 공동체의 힘

관건은 왜 우리에게 가족이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이자, 아동 양육과 사회화 기능, 가족 구성원의 부양 및 보호 기능, 그리고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서 서로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안식처로서의 기능 등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해 왔다. 이러한 가족을 도구화할 것이 아니라 가족 자체를 귀하게 여기고 서로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 가족만을 중시하는 태도는 우리 사회를 가족들 또는 집안들 사이의 대결장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가족의 삶은 ‘우리’라는 경계를 허물고 우리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새로운 지평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형태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이다. 기존의 가족이 더 이상 이러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가족으로서 교회 공동체가 그러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혈연이나 지연에 연고한 가족주의가 아니라 신앙 공동체 안에서 기독교 정신에 터한 새로운 가족을 형성해야 한다. 교회 안의 다양한 소모임들이 가족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매주 정기적으로 모이는 구역이나 속회와 같은 소모임들은 정서적인 지지와 심리적 위로 등 그동안 가족이 해온 중요한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교회 모임을 통해서 가족이 없는 사람이나 가족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가족의 역할을 대신해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끼리의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럴 때에 교회는 새로운 가족으로서의 힘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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