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세운 인쇄회사 진흥문화를 어엿한 기업으로 키워낸 박경진 회장. 78살이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왕성한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금도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고 고백하는 박경진 회장을 만났다.
 
▲올해 78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진흥문화 박경진 회장을 만났다.ⓒ데일리굿뉴스 
 
"감사하는 삶의 태도가 성공비결"
 
진흥문화 박경진 회장은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아무런 연고도 없던 서울로 상경했다.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험난한 시절을 겪었다는 박경진 회장. 하지만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도, 판잣집에 살았던 고단함도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군대 가기 전에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3년이 지나고 보니깐 다 없던 일이 되고 말았어요. 1969년도 말에 서울로 올라와서 용역, 보따리 장사 등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10년 동안에 이사만 25번을 갔어요."
 
우연히 달력 외판원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돼 1976년 진흥문화를 설립했다.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지만, 1983년 당시 성화 달력이 큰 인기를 끌면서 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지게 됐다. 1990년대에는 인쇄기를 갖추고 자체 생산에 들어갈 만큼 성장했다. 지금은 인쇄부터 출판, 문구,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박 회장은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외상거래를 하지 않는 철칙을 지킨 것을 성공의 비결로 꼽는다. 가족과 같은 회사를 추구하며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도 100여 명의 직원 중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IMF를 하나님이 기업인들에게 근신하라고 주는 경고로 생각하고 자신이 타던 자가용을 팔아 직원들의 보너스에 보태는 솔선수범을 보였다.
 
회사를 휘청이게 할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2004년 4월경에 공장에 화재가 발생한 것. 만약 달력 제작을 위한 용지나 완성품이 가득하게 있었을 연말에 불이 났다면 진흥문화가 입을 피해는 막심했을 것이라고 박 회장은 회상했다.
 
"화재가 일어난 다음날 전 직원과 함께 예배를 드렸어요. 회사가 입을 피해를 최소화시켜 주시고 경각심을 일깨워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이나 직원들 모두 눈물로 드리는 예배였어요."
 
해외입양인 초청ㆍ장학금 지원 앞장서
 
박 회장은 자신의 어려웠던 지난 시절을 잊지 않고 나눔에도 앞장서고 있다. 한국기독교한센인선교회 이사장을 맡아 해외 한센인 선교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에서 만난 한 입양인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1996년부터 해외입양인 모국방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 동안 북미와 유럽 지역에 입양된 400여 명의 입양인과 가족들을 초청했다.
 
올해 한카문화교류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박 회장은 한국과 캐나다 수교 55주년인 2018년에 양국에서 두 차례 해외입양인 모국방문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2010년 진흥문화재단을 설립해 장애인과 고려인, 탈북민 청소년들에게 꾸준히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2000년도에 환갑 잔치할 돈으로 직원 자녀들에게 학자금을 주기 시작했어요. 이걸 확대해서 재단으로 만들었습니다. 성적이 떨어지지만 않으면 졸업할 때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박경진 회장은 올해 1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기독교 관련 유물을 협성대학교에 기증했다. 앞으로 기독교 문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박 회장은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한국교회의 역사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자신의 뿌리, 과거의 역사를 알아야 내일을 내다볼 수 있어요. 한국의 기독교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배우게 하는 일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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