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국 선교사ⓒ데일리굿뉴스

1453년 5월 29일 이날은 정교회의 중심지였으며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 군대(오스만터키)에 점령당한 날이다. 최근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의 새 이름)을 다시 방문한 필자는 거리에서 터키 식 커피를 한 통 구입했는데 브랜드가 ‘1453’이었다.
 
나는 오랜 터키 커피의 역사를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집에 와 뜯어보니 이슬람군대가 기독교 최후의 도시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것을 기념해 만든 커피라니 커피 맛이 나에겐 더욱 쓰디 쓴 맛일 수밖에 없었다.
 
오래 전 소아시아 7개 교회 유적지를 두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유적지 돌무더기 위를 걸으면서 나는 깊은 심정으로 오열을 하고 말았다. “오 하나님, 이건 아닙니다.” 그렇게 멋진 소아시아 교회들, 비록 초기 기독교 형태이지만 그들은 기독 교회사에 새벽별 같은 존재였는데 지금은 황폐한 땅이 되었으니 “아, 이 빼앗긴 들에도 복음의 봄이 다시 오려나?” 터키를 방문할 때 마다 이 땅이 복음에 심히 저항하는 땅으로, 영적으로 견고한 진임을 느낀다.
 
작년 앙카라에서 만난 인터서브 선교사는 터키의 개신교도가 5,000명인데, 선교사가 5,000명이란 말을 듣고 나의 귀를 의심했다. “어디 이럴 수가?” 올해 다시 찾은 이스탄불에서 20년 가까이 선교한 선교사로부터 터키 기독신도 수가 5,000명 보다 많은 8,000명쯤이란 말을 들었고, 선교사는 5,000명 미만이란 말을 들었건만 도저히 위로가 안 되었다.
 
추운 겨울을 지나 새로운 봄을 기대하기
 
오스만 터키 이전 셀주크 터키는 이슬람을 그들의 종교로 집단적으로 받아 들였고, 이것은 제국 확장의 도구로 사용했다. 오스만 터키 지배 시 소아시아의 수많은 기독인이 그리스 등지로 이동해 복음의 땅이 황무지화 하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이스탄불의 역사가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으니, 교회의 단합과 일치 정신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동서로마의 정치적 분열이 교회의 분열을 가져 왔고, 나아가서 아리우스 논쟁으로 불리는 예수님에 대한 양성론 대 단성론 시비로 소아시아 및 앗시리아 그리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수많은 교회를 단성론으로 정죄했으니 이들의 심적 타격은 오스만터키 군대가 이집트를 침공할 때 일부 신자는 환영하기까지 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끼리의 정죄와 증오감이 직접 분열현상을 가져온 것이다.
 
더구나 동로마제국이 셀주크와 오스만 터키 군대의 예루살렘 지배에 대해 서방교회(당시 로마교회)에 구원 요청 시 십자군의 원정으로 인한 얼룩진 역사가 또 있었다. 이들의 무자비한 무슬림 학살도 교회사에 나온다. 물론 이슬람 군대도 옛 기독교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양심적인 기독역사가들은 십자군의 과잉 액션을 질타한 바 있다. 이 전쟁의 후유증이 오늘날 이슬람권 선교지로 가는 선교사들에게는 목에 메고 가는 연자 맷돌이 되고 있다고 허버트 케인은 그의 간추린 교회사에서 역설한 바 있다.
 
그런데 더 심한 행위는 이 서방 십자군들이 정교회의 성물을 무단 탈취하고 그들의 서방교회 지부(동방교회라 칭함)를 설립하는 등 그들의 그릇된 행동은 동방정교회들에게 너무도 힘든 시련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 오스만 군대의 세금 과다 징수(중세과세)와 회유로 인해 많은 정교회들이 오랜 세월 동안 무슬림화 되는 과정을 겪는다.
 
콥틱교도들의 눈물 나는 신앙 지키기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이집트는 동방기독교의 한 축이었고, 당시 최대 도서관과 기독교 연구가 한 시대를 밝히 증거하고 있다. 이들은 오스만터키 군대가 침략할 때 무력하게 그들을 맞았는데(일부는 환영까지 했으니, 얼마나 서방교회의 단죄에 실망했으면 그렇겠는가?) 세월이 갈수록 이슬람의 회유와 협박은 갈수록 지능화했다.
 
그러나 자신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후손이 이런 협박에 넘어가지 않도록 피터지게 신앙을 이어갔고, 이들이 지금은 이집트 전역에서 콥틱 기독교로 그 땅을 지키고 있으니 자그마치 976만 명이나 되고 있다.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그들의 손목 뒤에 십자가 문신을 여러 명 보았는데 절대 개종하지 않겠다는 집안 전통의 무서운 의지를 읽고 나는 너무 감동하고 말았다.
 
이 콥틱 기독교의 영향을 직접 받은 데가 에티오피아 정교회인데, 에티오피아를 비롯해 그 이남에 있는 케냐, 탄자니아 등지가 이슬람화 되는 것을 막는데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도들의 눈물 나는 저항정신이 공헌한바 많다. 이 역사의 현장을 확인한 필자는 현지에서 얼만큼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오늘날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를 찾는 개신교 선교사가 이들의 피눈물 나는 신앙 지키기 정신을 잘 이해하지 않고, 개신교로 개종시키기에 열심이라면 우리는 이런 선교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한다. 사실 그들의 단성론도 역사 속에 정죄된 것 보다 양성론에 가까운 주장임을 알 수 있었고, 당시 교단 정치의 희생물이었음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빼앗긴 들에 다시 봄이 오기를 바라는 21세기 현지 선교사들과 그들을 보낸 한국교회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난 2000년간 우리 믿음의 형제 안에서 ‘무엇이 다른가?’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쉽게 이단으로 정죄해 우리의 아름다운 땅을 적들에게 너무 쉽게 내주었다.
 
그래서 이제라도 ‘무엇이 같은가?’ ‘우리 모두가 믿는 분은 예수 아닌가?’ 그분 안에서 4개의 복음서 시각이 있었다면 그를 따르는 우리들에게도 조금 다른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너무 같은 것이 많은데 기독교는 너무 많은 실수를 즉 서로 다른 조그만 것에 집착하여 대마를 잃곤 했다.
 
빼앗긴 들에 다시 한 번 방문하면서 그 땅에서 새벽마다 울며 씨를 뿌리는 5,000명의 선교사를 격려하고 싶다.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게 하고 싶다. 다시 그 땅에 봄이 올 것을 선포하자. 실망 말고 씨를 뿌린 후 물을 주며 저녁때 기쁨의 단을 들고 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
 
당대의 추수가 어려울 수 있다. 다음 아니고 그 다음세대면 어떻겠는가? 빼앗긴 들에도 봄이 다시 오는 소망의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 오늘 뿌리는 복음의 씨는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저작권자 © 데일리굿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