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대표적 신앙인으로서 한국 여성운동의 초석을 다진 '이희호 여사'의 별세 소식에 교계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으로 사랑과 헌신, 정의와 인권을 위해 몸바친 이 여사의 삶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상당한 메시지를 던진다.  
 
 ▲2015년 서울 서대문 창천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희호 여사.(사진제공=김대중평화센터)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하겠다'고 밝혀
 

"하늘나라에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희호 여사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이 여사는 건강이 악화하기 직전까지 늘 성경책을 가까이할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시련에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믿음으로 한국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 여성·장애인 인권 신장에 족적을 남겼다.
 
과거 여성에게 혹독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운동가 1세대'이자 '민주화운동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는 신앙의 힘이 컸다.
 
이 여사는 모태에서부터 기독교 신앙 속에 자랐다. 일찍 개화한 그의 부모는 독실한 감리교 성도들로서, 부친은 세브란스 의전을 나와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의사면허를 취득한 인재였다. 부모의 열렬한 지원 속에 그는 일제 치하에서 기독교 미션스쿨인 이화여고와 이화여자전문학교를 다니며,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기독교적 가치관을 습득했다.

이 여사는 이러한 가치들을 삶에서 몸소 실천했다. 1963년부터 서울 창천감리교회에 출석한 고인은 20여 년간을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무엇보다 영부인이 된 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든든한 조력자로서 기도로 내조에 임했다. 유신독재 시절, 김 전 대통령의 신념과 의지를 지키고 두려움을 이겨내게 해준 것도 이 여사의 신앙이었다.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이 수감됐을 당시 두 사람이 주고받은 ‘옥중편지’를 보면 이 여사의 조언이 중요한 버팀목이 됐다는 걸 알 수 있다.
 
“당신이 늘 말하는 바와 같이, 행함이 없는 양심은 악의 편에 속한다 하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무엇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야고보서 4장 17절)”     

고인의 이런 발자취에 교계에서는 이 여사에 대한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이홍정 목사·교회협)는 이 여사를 '김 전 대통령의 짝'이자 '투쟁하는 이들의 친구'로 기억했다.

이들은 "유월항쟁을 기념하는 날, 이 밤에 이희호 여사는 하늘로 가셨다"며 "그는 여성의 권익과 사회적 지위를 위해 노력했고, 아동과 청소년에게 힘이 되고자 노력했다. 남과 북의 평화로운 앞날을 위해 경계 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들 단체는 1970년 목요기도회 때 찍힌 이 여사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사진에 대해 교회협은 "민주를 외치며 행동하고 고뇌하던 이들이 모여들었던 기도회의 사진"이라며 "이제는 이 여사를 기록만으로 기억해야 하지만, 새로운 시간들 속에서 그를 기억하면서 힘없는 이들과 연대를 통해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YWCA도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 단체는 1958년 이 여사가 총무를 맡게되면서 여성운동의 초석을 놓은 곳이다.  

한국YWCA 한영수 회장은 "고인은 법적으로 여성들이 인권을 가질 수 있도록 가족법 개정을 추진하고 혼인신고를 독려해 당시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보호했다"며 "이 여사가 영면하므로 여성운동의 대들보를 잃었지만 그의 발자취를 쫓으면서 평등을 위한 일에 지속적으로 매진하겠다"고 전했다.  

한국YWCA는 고인의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오는 13일 여성계 추모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이희호 여사의 장례예배는 오는 14일 오전 7시 창천감리교회에서 열린다. 이후 동교동 사저를 거쳐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김대중 전 대통령 곁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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